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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의 진실을 밝힌다
2018/10/15 15:3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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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이 꼭 40년이 되는 해라 뜻 깊은 행사를 준비하면서 아직까지 부·마민주항쟁의 진실을 정확하게 밝혀지지 못한 채 기념일만 합의 한 것이다.
1979년 10월 16일을 부·마민주항쟁의 기념일로 잠정적으로 합의했다고 부산, 창원 부마항쟁의 관계자가 발표했다.
 
▲부·마민주항쟁의 진실은 어디까지 왔는가?
부·마민주항쟁을 가져다 준 역사적 배경을 반드시 규명해야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고 진단할 수가 있다.
1970년대 박정희는 “국력의 조직화, 효율의 극대화”라는 국호를 내걸고 대한민국의 모습을 바꾸어 나갔다. 7년간의 유신체제가 정치적 자유를 제약하는 대신 행정성의 효율성을 극대화함으로써 국가 개조 사업을 가능케 했다. 이 시기 김대중, 김영삼은 민주화운동 세력의 구심점을 펴면서 희망과 용기의 상징으로 중심에 서 있으면서, 민주의 작은 불씨를 피워 오르게 했다. 김영삼은 장내에서, 정치판에서, 김대중은 장외에서 경쟁적으로 박정희 정권을 상대로 두 축이 싸워 왔다. 그 과정에서 김대중은 납치와 투옥, 김영삼은 국회에서 제명을 당했다.
부산시민들은 김영삼 씨를 그 어느 정치인보다 사랑하고 아끼며 그를 존경해 왔는데 어느 날 국회에서 제명당하는 사실을 보고 부산과 마산 시민들이 마음속으로 울컥하는 경상도 기질이 솟아나 잠재적 흥분을 유발시켰다.
김영삼 국회제명이 부·마사태의 주요 원인을 제공하는 기폭제로 삼았다. 부·마 사태로 인해 김재규 당시 정보부장이 직접 부산에 내려 와 이 광경을 목격하고 그를 변심시켜 열흘 뒤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는 10.26 사건으로 연결되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부·마 사태의 원동력은 이런 경쟁과 협력 속에서 1970년과 1980년대를 두 김씨는 대동단결 할 때는 협력하고 경쟁일 때는 서로 반목하며 선의 의 적수로 살아 온 그들이었다.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분수령은 바로 부·마 민주항쟁이라는 시민운동이 일어났기에 1980년의 봄이 가능했다.
 
▲숨은 세력은 부산에 산재해 있는 기독교 재야인사
여기에 보이지 않고 드러내기조차 꺼려했던 민주항쟁의 숨은 인사가 존재하며 희생과 헌신을 몸소 실천한 행동하는 인사가 있었기에 부·마 민주항쟁이 가능할 수 있었다.
세간의 눈을 피하면서도 늘 하루도 멀다하고 정보경찰과 보안사, 중앙정보부 요원들의 감시 속에서 용하게 버티며 살 수 있었던 힘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힘이 무엇보다 받쳐주었고 위로의 친구가 되고 동역자가 되어 주었다. 어떤 때에는 쉽게 어울릴 수없는 신·구교 일치로 개신교와 가톨릭이 한데 뭉치는 놀라운 역할이 합쳐지기도 했다. 특히 개신교안에서의 기장(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 기독교감리회, 복음교단, 성공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일부 장로 인사)가 부·마 민주항쟁을 가능케 한 숨은 공로자들이고 부·마 사태의 숨은 주역들이다.
바로 기장 교단의 부산중부교회 담임이었던 고 최성묵 목사 외 그의 사위 고 김영수 목사, 고 심응섭 원로목사이고 중부교회에 출석하던 조태원, 김영일, 정동영, 이태성, 조정삼, 정의영, 이상경, 최준영, 조인두 등10여 명의 대학생, 청년이 일선에서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구속되는 등 탄압을 받았으며 기감교단 고 임기윤 목사(제일감리교회 담임)는 보안사에서 취조 중 쓰러져 목숨을 잃은 순교반열에 들었다. 통합교단의 박광선 목사(산정현교회 담임) 고 유기선 장로(유기선소아과의원원장) 임동규 목사(부산YMCA 사무총장), 박상도(도시산업선교회 총무), 김동수 장로(부산YMCA 이사장 부산대 의대 교수) 고 우창웅 교수(전 부산교육대 교수, 부산진교회 장로) 복음교단의 전병호 목사(남천 복음교회 담임) 변호사 김광일 장로(부산중앙교회), 이흥록 변호사, 문재인 대통령, 고 노무현대통령, 송기인 신부, 고 오수영 신부, 황대봉 목사(고신대 신학과 출신), 김희욱(양서협동조합 사무총장, 부산영락교회 집사), 김재규(부산민주항쟁기념관 관장), 노경규(전 국민연금공단 감사, 중부교회 집사), 조태원(민주화운동 동지회 부회장 부산중부교회 청년대학생), 김형기 목사(당시 서울대 출신 새문안교회 청년으로 부산에 피신 김광일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 고 김은숙 미문화원 방화사건(고신대 기독교교육과 재학)이 공동 주역, 문부식 당시 고신대 신학과 학생 이외숙 고신대 의예과 학생 이들은 대부분 부산중부교회 출석하면서 주일학교 교사 역할했던 인사들로 오늘의 부·마 민주항쟁의 실제 주역들이고 이들의 영향으로 부산대 이상걸 등 학생 등이 거리로 나선 행동대의 외부 주역들이다.
이제 비로소 증언하건데 변호사 고 김광일 장로가 부산에 변호사 개업이 없었다면 과연 부·마 사태가 더 늦어질 수가 있었고 소진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광일 변호사가 변론하여 얻은 수입금 일부를 민주운동의 윤활유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억울한 이웃을 위해 무료 변호로 나섰고 옥에 갇혀 있었던 김대중 씨를 진주 형무소로 공동 무료변론으로 나섰던 것이 부산, 마산의 민중을 봉기하게 만든 인물로서 충분한 자금줄 역을 감내 해 왔다.
이러한 사실들은 필자는 김광일 변호사와 함께 교계 신문(교회연합신문 주재기자, 지사장은 김광일 장로)에 일한 경험이 있어 지켜 본 것이다.
때로는 한국교회 개혁과 변화를 촉구하는 소위 가룟유다 예찬론의 국제신문 칼럼에 연재하여 교회 안팎으로부터 교회직분 박탈 등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이 땅의 민주화의 꽃을 피운 자유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웃음 지으며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신이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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