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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역 민주화 운동에 얽힌 이야기
2018/07/09 12:5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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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진실
2018년 6월 말 쯤 되는 어느 날 춘천인가 하는 곳에서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동안 자취를 감추고 투병 생활하던 부산 YMCA 사무총장을 지낸 임동규 목사의 반가운 음성이었다. 뜻하지 않던 파킨슨을 앓고 치료와 재활을 하기위해 재활 요양병원에서 한달간 재활하고 부산에서 만나 1979년 10월 부마민주화운동을 실제 몸으로 가담하여 활동 한 내용들을 인증 받으려고 그 당시 교계 현장 기자로 있었던 사실들을 자료로 모았으면 하는 당부를 잊지 아니했다. 부마항쟁의 뿌리와 역사적 배경을 진단하고 1979년 10월 부산지역의 민주화의 꽃을 피운 교계 인사 주역들은 과연 누구였는가? 부산 민주화 운동의 첫 불씨를 제공해 주었던 곳은 다름아닌 기독교장로회 부산 중부교회(중구 보수동 헌 책방 골목 입구) 지금은 고인이 된 최성묵 목사, 故 김광일 변호사(전 김영삼정부 시절 비서실장), 故 임기윤 목사(제일 감리교회 담임 역임), 가톨릭에 송기인 신부, 故 오수영 신부, 그 지도자의 배후 실무 행동을 옮긴 인물들은 임동규(부산 YMCA 사무총장), 박상도(부산YMCA 이사장과 간사역임), 김형기 목사(당시 김광일 변호사 사무간사), 조태원*중부교회 당시 대학생), 김영일(당시 부산대학생), 조점삼 교사, 차선각 목사, 박광선 목사(산정현교회) 등 외 다수 교계민주인사가 직, 간접으로 암암리에 협력랬다. 중부교회는 민권운동의 정치 일번지로 의식 있는 민주인사들이 이곳에서 금요기도회를 통해 중앙의 유명 민주 인사들이 강사로 힘을 북돋아주고 불을 붙인 것은 하늘이 알고 땅도 알았던 사실이다. 한국교회 기독 청년 초교파(소위 NCC가맹교단 기독 청년집단 모임) 기구가 바로 한국 교회 EYC의 부산 조직의 초대 회장이 임현모 장로이고 2대가 임동규 목사, 3대가 박상도로 그야말로 기독 청년 단체 조직으로서 가장 강성한 단체로 활동 하였다. 부산 EYC 회장을 하기 전 임동규 목사는 통합교단인 전국청년연합회 회장으로서 당시 1981년 8월 여름 수련회를 부산 수안교회에서 열어 유신반대 성명서를 발표 한 용기있는 기독청년단체로 경찰, 정보부, 기무사기관원들이 제일 껄끄럽고 두려워하는 단체로 지목하기도 했다. 임동규 회장을 수배하기위해 백방으로 경찰이 숨바꼭질을 하는 날이 많았다. 일찍이 부산 영도중앙교회(지금의 땅끝교회) 학생으로 부산대학 정외과를 나와 전국 기독청년회 연합회로 통해 두각을 나타냈다. 결국 사회에서 감시와 사찰을 받던 차에 통합 츨 교단이 운영하는 장로회신학대학원 제77기로 졸업한 인사로는 부산에는 차선각(수산대학을 졸업), 안유환 당시 부산일보기자, 서울 경실련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 한 서경석 목사, 고무송 목사(기독공보 편집국장) 부산진교회를 담임했던 이종윤 목사, 지금 통합총회 부 총회장 림형천 목사(평촌교회), 한재엽 목사(장유대성교회담임), 임대식 목사(연세대, 평화교회담임), 한영수 목사(구포교회담임), 문순원 목사(총회규칙부장역임), 박성화 목사(새생명교회담임) 한때 해직되었다가 복직된 조선대 국문학과 교수 임영천 목사, 송재천 목사(크리스찬신문 편집부장) 등 77기 129명은 지금도 통합 교단을 이끌어 간다는 속설이 소문으로 돌고있다. 아마 부마항쟁의 불씨는 중부교회에서 늘 금요 혹은 목요기도회로 통해 서울에서 온 박형규 목사, 문익환 목사, 문동환 교수, 김동길 연세대교수, 한완상 서울대교수, 서남동 한신대교수, 김성재 한신대교수들이 와서 한국적 유신독재 권력의 이모저모를 폭로하고 탄압받던 이들과 함께 저항운동의 피난처가 된 곳이 바로 중부교회였다. 필자느 바로 중부교회에서 주일학교 부장과 집사로서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한 산 증인이다. 물론 교계 기자로서 70~80년도까지 10년간 중부교회 출석하다가 친동생이 육사27기로 나와 대령 진급시절에 기무사의 압력에 동생이 진급 탈락한다는 소리에 최성묵 목사에게 사실 직고하고 지금의 통합측 은성교회로 옮겼던 사실을 이제야 고백한다. 부마항쟁의 민주인사로 자처하는 요즘 뉴스를 접하면 고생은 부산교계인사들이 따로 하고 영광과 감투는 다른 비신자인사분이 받아 서로 투사로 자처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하늘나라에 사 있는 민주인사 목사, 장로 분들이 웃음치지 않을가 싶다. 부마 민주화 운동의 진실의 역사를 분명히 알아 둘 교훈이 있다면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은 이 땅의 자유민주화를 위해 사심없이 투쟁하고 몸으로 고통당한 댓가를 결코 바라지 않고 작은 예수로 살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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