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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부산기독교이야기18] 서초시는 누구인가?
2017/11/13 15:4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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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지방 초기 개종자이자 수세자로 언급되는 서초시는 누구일까?
서초시라는 이름이 처음 언급된 것은 부산지방 첫 북장로교 선교사였던 윌리엄 베어드의 기록이다. 베어드는 그의 1894년 1월 3일자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나의 어학선생 안 서방이 자기 집에 갔다. 따라서 지금 나에게는 어학선생이나 조수가 없다. 부산으로 돌아간 후에 안 서방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임시로 서초시(Saw Chosi)를 나의 어학선생으로 채용했다.”
  그해 2월 28일(수)일기에는 “나의 어학선생은 서초시 라는 나이 드신 부산 사람이다. 그는 순수한 마음을 지닌 노인인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그와 그의 아들은 같이 가정예배를 드리고, 큰 기쁨과 성경의 신적 기원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성경을 공부한다. 그는 아직까지 세례를 요청하지는 않았다. 그는 조상제사라는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다만 제사상에 음식을 둘 뿐이지 절을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양심은 많이 괴로워하고 있다. 그가 우상숭배를 완전히 끊을 만큼 강해지기를 바란다.”라고 쓰고 있다.
  그를 정식 조수로 채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4월 6일자 일기를 보면, “나는 동래로 일주일 남짓 여행을 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 진정한 신자는 없었다. 서초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했고 세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자신의 요청에 전적으로 신실하기를 바란다. 그는 가난하지만 착한 마음씨를 가졌다. 나는 그가 영원히 주께 붙어 있기를 소망한다. 그가 나에게서 영구적인 일자리를 얻고 싶은 이유 때문에 믿음을 고백하기가 쉬울 것이다. 나는 그가 더 고상한 동기를 지니고 있고 적어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고 믿는다. 하지만 조상제사나 제례 관습에 대한 태도는 아직까지 확실치 않다.”라고 썼다.
  그에 대한 언급은 4월 16일, 5월 7일, 9월 17일, 11월 7일, 그리고 1895년 2월 6일, 3월 25일, 4월 1일, 그리고 4월 27일자 일기에도 있다.
 그는 베어드의 어학선생 혹은 매서전도자 그리고 베어드가 설립한 남자학교(The Chinese school)의 교사로 일하기도 한다. 그가 1894년 7월 15일 베어드로부터 세례를 받게 되는데, 이것이 부산지방에서의 두 번째 세례식이었고 베어드의 첫 세례였다. 베어는 이날의 세례식에 대해 7월 16일자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날씨가 매우 덥다. 어제 서 초시와 우리가 ‘아말리’(Amali)라고 부르는 곽수은이 세례를 받았다. 예배는 여기 우리집에서 드려졌다. 모든 외국인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예배에 참석했다. 나는 로마서 12장 1~2절을 설교한 후 그 두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예배 후에 아담슨 씨(Mr. Adamson)가 영어로 사도행전 12장 1~2절을 설교했고, 우리는 목숨을 버리신 주님의 사랑을 기념했다. 한국인들은 돌아가지 않고 다 참여했다. 한국인 7명, 곧 남자 4명과 여자 3명, 그리고 9명의 외국인, 곧 남자 3명과 여자 6명이 참여한 것이다. 예배는 매우 엄숙했고 그냥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대부분의 시간을 조용히 앉아 있었다. 전부 약 50~60명의 한국인이 참석했다. 주께서 작은 불꽃을 크게 일으켜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베어드는 1893-4년 부산지부 선교보고서에서 이렇게 썼다. “7월 15일 저는 저의 집에서 두 사람을 믿음의 식구로 맞이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한 사람은 서초시로 한동안 저의 조선어 교사였고, 다른 한 사람은 우리집 가정부였습니다. 두 사람은 수개월간 세례받기를 기다리며 교육 중이었습니다. 때가되어 이들은 세례를 받았고, 이어 성찬식이 집행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서초시는 누구인가? 그가 바로 서 였다. 그런데 그를 초시라고 부른 것은 무슨 연유일까? 초시(初試)란 지방에서 행해지는 향시(鄕試)라고도 불리는 일종의 과거시험인데, 이 시험의 첫 단계를 통과한 합격자를 칭하는 용어였다. 초시라고 할 때 이 말은 조선시대 문과(文科), 생진시(生進試), 무과(武科), 잡과(雜科) 등의 첫 시험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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