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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부산기독교이야기 12] 부산에 온 첫 거주선교사 제임스 게일
2017/07/24 16:0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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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온 선교사 중에 제임스 게일(James Scarth Gale, 1863-1937)만큼 흥미로운 이들이 많지 않다. 그는 한국 이름 기일(奇一)만큼이나 특이하고 기이한(奇) 생애를 살았다. 그는 선교사면서도 언어학자였고, 저술가였으며 번역가였고, 역사가이자 민속학자였고, 또 성경번역가이자 목회자였다. 그는 ‘조선의 마테오 리치’라고 불릴 만큼 한국의 역사와 전통, 민속과 언어, 문화와 문학을 연구하고 사랑했던 한국학 연구의 선구자였다. 각종 언어에 해박했던 그는 서양 종교와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서양세계에 알리는 가교적 역할을 감당했다. 그는 자신의 한국어 이름도 자신이 작명했을 정도였는데, 그의 삶의 여정과 그가 남긴 편린들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기독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그가 부산에 정주했던 첫 거주선교사였다는 점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원래 그는 스코틀랜드인으로 13살 때 캐나다 온타리오 주 알마(Alma)로 이민 온 이민1.5세대였다. 어머니는 성(姓) 씨(Miami Bradt)가 암시하듯이 화란계 미국인이었다. 그래서 화란어도 어렵지 않게 배우게 된다. 후일 배위량(William Baird)는 게일을 가리켜, “반는 스코틀랜드인이고, 반은 화란인이지만 완벽한 영어 사용자”고 말한 적이 있다. 토론토대학 재학 당시 성경언어 혹은 고전어를 공부했고, 프랑스로 파리로 가서 그곳의 선교기관(McCall Mission)에서 약 6개월간 단기선교사로 일하는 동안 불어를 습득하게 된다. 한국에 온 후에는 한글은 물론 한자와 일본어도 습득하여 동양고전에 대한 식견을 쌓게 된다.
그가 The Vanguard(1904), Korea in Transition(1909), Korean Folk Tales(1913), History of the Korean People(1926), Korean Grammatical Forms(1893), Korean Sketches(1898) 등 9권의 영문 저술을 남기고, 30여권의 한국어 저술과 많은 번역서와 논문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언어와 문화에 대한 식견이 기초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한국어로 번역한 첫 책은 1895년에 출판된 『텬로역정』인데, 물론 한국인 이창직의 도움이 컸지만 이 책이 한국 근대문학에서 첫 산문집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1717년도 영국에서 출간된 다니엘 디포(Daniel Defoe)의 Robinson Crusoe를 『로빈슨 크로스』로 역간했다. 한국어 저술로는 『한양지』(1898), 『금강산지』(1898), 『예수의 재림』(1898), 『나사렛 예수』(1927), 『성경요리문답』(1929) 등이 있다. 한국 문학을 외국에 영역(英譯)하여 소개한 것은 『구운몽』, 『춘향전』 등이 있고, The Korea Mission Field와 Korean Repository, 그리고 『신학지남』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한영자전』(1897, 1911, 1930)을 편찬한 것은 한국에 대한 커다란 기여였다. 한국 주자(鑄字), 즉 활자의 발견이 세계 최초라는 것을 처음 밝힌 것은 게일이었고, 그의 큰 공로였다. 이런 그의 연구가 시작된 곳이 부산이었고, 지금의 영주동의 영선교개 근처가 그의 산실의 모실(母室)이었다.
그가 1888년 6월 12일 토론토대학에서 문학사학위(BA)를 받고 대학을 졸업한 후 모교의 YMCA와 향후 8년간 연 500달러의 보수계약을 맺고 평신도 선교사로 내한하게 되는데, 당시 내한했던 선교사들의 일년 급여가 1천달러가 넘었으므로 게일의 급료는 그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그가 토론토에서 한국으로 오는 여정은 약 한 달이 소요되었다. 토론토에서 밴쿠버까지 기차로 갔고, 밴쿠버에서 1888년 11월 13일 선편으로 태평양을 횡단하여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그해 12월 12일 부산에 도착하였다. 그가 부산에 체류한 시간은 28시간이었다고 한다. 다시 선편으로 서울로 향해 15일 제물포를 거쳐 서울로 들어갔다. 이 때 그의 나이는 25세였다.
그가 한국에 도착하여 쓴 첫 편지는 부산을 떠나 제물포로 가는 선상에서 쓴 1888년 12월 14일자 편지인데, 이 편지에서 그는 12월 12일 3시경 부산에 도착하여 28시간을 체류했다고 했고, 주로 해변가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가 본 첫 한국인들은 흰옷을 입고 있었고, 일본인 보다 키가 크고, 모두가 담뱃대를 들고 다니며 담배를 피웠다고 썼다(The Varsity, 9, Feb., 1889, 96쪽). 서울에 도착한 그는 지금의 구로구 오류동인 오릿골의 한옥에서 첫 밤을 지냈는데, 온돌방은 뜨겁고, 빈대가 많아 서울에서의 첫 밤은 고통스러웠다는 흥미로운 기록이 남아 있다. 그는 언더우드 집에 기거하면서 우선 어학공부를 시작하였고, 3개월이 지난 1889년 3월 17일에는 내지 답사를 겸한 순회여행을 시작했다. 즉 황해도 해주를 경유하여 장연군 소래로 갔는데, 이곳에서 게일은 평생의 동료이자 동역자인 이창직(李昌稙, 1866-1936)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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