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러 다닌다. 그런데 지난 9월부터는 교육을 다니면서 교육 마지막 즈음에 본인이 다니는 대학원 동기들과 찍은 사진, 그리고 누누서포터즈 단원들과 찍은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여준다. 그리고 그 밑에 써 놓은 한 문장을 읽어주며 어울림을 강조한다. 그 문장은 이렇다. “장애인의 건물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의 법적 요구 사항이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태도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어울림이 중요하다”(크리스 H. 헐쇼프, 예수와 장애, 대장간)
이 문장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이들과 어울리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도 편견 없이 차별하지 않고, 배제하지 않고 어울리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가? 아니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교회 내에서만 외치는 구호로 남겨 놓고, 교회 밖에서는 끼리끼리 어울리는가? 왜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외치면서 실생활에서는 자신과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받아온 가정교육, 학교교육, 교회교육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신 보다 경제 형편이 좋지 못하거나, 배움이 덜 하거나, 신체에 장애가 있는 자들과는 어울려 놀지 말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왔다. 그러다 보니,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어울릴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 어디에서도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함께 어울리는 교육을 직장을 다니는 어른들과 유치원이나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들과 학생들은 의무적으로라도 받고 있다. 본인이 강의를 하러 전동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멈칫하며 피하기보다는 신기하게 생각하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장애인을 마주할 때에 어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처량하고 불쌍한 눈빛과 말은 아이들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은 의무교육을 통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가? 교회는 여전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한다. 다른 부서들도 분리했다고? 분리한 것은 맞다. 대신 연령대별로, 성별로 나뉘어 놓았다. 그런데 유독 통합해서 만든 부서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사랑부라고 명명된 장애인부다. 장애인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교회 내 다른 부서들은 연령별, 성별로 나뉘어져서 연령과 성별에 맞게 예배도 드리고, 교육도 하고,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그리고 담당 교역자도 가급적 부서 전문 사역자를 찾아 세운다. 그런데 장애인부는 어떤가? 몇 교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장애인부에는 연령대 구분도, 성별 구분도, 심지어 장애 유형 구분도 없이 하나로 통합되어 운영되어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교육도 없다. 그러다보니 장애인에게 말로써 상처주는 사람들 중에 교인들이 제법 많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들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본인이 미안해진다.
세상은 장애인이 지역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존재임을 인식하고, 이에 따른 법률을 제정하고 시행되어 가는데, 교회에서는 여전히 장애인은 비장애인에게서 분리 할 대상이며, 나이와 성별을 고려하지 않은 하나의 묶음으로 존재한다. 학교와 사회는 장애인과의 어울림을 강조하는 데, 교회에서는 어울림 보다는 분리를 유지하고 있으니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은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 이제 교회 내에 장애인부가 존재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고마워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교회는 이제 장애들만을 따로 분리하는 것을 멈추고, 이들 역시 다른 성도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어울림’이라는 말이 교회에 어울리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