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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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장로는 1957년 3월 30일생(58세)으로 부산 태생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이 땅에 사회적 약자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유일하게 법원에 판·검사라고 느낀 끝에 30년간 법정에서 사회적 약자와 힘없는 장애인, 소수자 보호를 위해 법관으로 살아왔던 독실한 크리스천 법조인이다.
김신 장로는 부산 고신 삼일교회에서 장로로 장립받아 교회를 10여간 섬겨왔다. 그는 스스로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로 인한 장애를 지녀 한때 법관 임용 당시 좌절을 겪기도 했었다. 사회일반 언론과 인권단체에서 장애인이라 해서 법관 임용에서 탈락시킬 수 있느냐며 화재의 인물로 떠올랐고, 여론에 힘에 의해서인지 5개월 후에야 판사 임용이 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장애가 있는 신체를 부끄러워하거나 열등감 속에서 소극적으로 살기보다는 자기노력과 개발을 계속해야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그를 강하게 하였다고 평소에 신앙간증을 통해 말해왔다.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시절에는 장애인에게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라는 에세이집을 냈다. 책 출간을 앞두고 믿는 분에게 제작을 의뢰했었는데, 제작가격보다 더 주었던 일화도 있었다.  
필자가 그와 만난 것은 평신도 집사 시절이던 1985년도부터인가 싶다. 그와 초·중학교를 함께 다니며 매일 책가방을 메면서 그를 옆에서 도와 준 친구 안흥일이 지금은 목회자가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교회와는 담을 쌓고 있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같은 기숙사 친구의 전도를 통해 우연히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1983년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임용한 이래 부산고등법원, 울산지원,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등 관내 각급 법원에서만 30년 간 정통 향토 법관으로 지냈다. 독신한 기독교신자라는 수식어도 따라 다녔다. 부인 신화순 권사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둔 가장이며, 자녀들도 법조인 길을 걷고 있다. 
한때 부산교회, 신평로교회 자체 분규사태로 교회가 둘로 나눠질 때 당시 교회분쟁 민사담당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매우 곤란했던 것은 그가 현직 판사이기 이전에 교회 시무장로라는 교회 항존직 직분 때문이었다. 이를 어떻게 화합해서 화평을 이루느냐에 고심했다. 그때 새벽재단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그의 신앙적 고백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가 매주 화요일마다 성경공부를 위해 나오는 부산기독기관장 조찬예배를 출석했는데 김 장로가 회장직을 맡을 때였다. 교회분쟁 해결 대안을 놓고 토론할 때 그의 심정을 표현했었다. 
늘 교회분쟁이 사회재판으로 끌고 올 때 ‘왜 크리스천들은 교회 안에서 해결을 못하고 사회법정으로 끌고 오는지’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것이 지금 기독교 화해조정위원회를 만든 양인평 당시 부산고등법원장 재직 시에 함께 고민했던 문제가 아닌가 싶다. 때론 필자에게 교단 헌법을 묻곤 했을 정도로 교회분쟁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부산교회(통합)과 신평로교회(합동) 교회 분쟁을 매듭짓는데 일반 법 적용보다는 서로 따로 판사실로 불러 기도하는 가운데 해결하는 일이 있었다. 이 일 때문에 대법관 후보 청문회시 야당의원이 공격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김신 대법관은 크리스천 법관으로서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먼저 기도하고, 판결을 하는 아름다운 모습에 모두가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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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문제, 왜 세상 법정으로 가져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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