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산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고 만다.
소년은 금방 잠에 골아 떨어졌다. 얼마를 잤을까? 온몸을 물어뜯는 빈대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 몇날 며칠 잠을 설친 소년은 빈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빈대는 헤엄을 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책상을 구했다. 책상의 네 다리 밑에 사발(접시)을 고이고는 물을 부었다. 책상위에 이부자리를 폈다. 기막힌 수중(?)위의 침대였다. 빈대를 따돌린 소년은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또 다시 빈대의 공격 앞에 서야했다.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책상 다리를 살핀다. 기어오르는 빈대가 없다. 저 깊은 호수를 무슨 재주로 헤엄을 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몸에 붙어 있던 빈대? 소년은 머리를 굴리며 얼른 잠이 들지를 못했다.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던 소년은 눈이 휘둥그레져 벌떡 일어난다. 뜻밖에도 책상 다리를 기어오르지 못한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정에서 낙하할 준비를 하고 있지 뭔가? 소년은 무릎을 친다. “빈대도 머리를 써서 사는데.....” 소년은 그 작은 깨달음 하나로 대기업을 일군다. 그가 왕회장이라 불렸던 현대의 고 정주영회장이다. 그의 평상시 가장 큰 욕은 ‘빈대보다 못한 놈’이었다.
내 어머니는 어디서 주어 들었는지 밑도 끝도 없이 내게 지천을 퍼부었다. “대체 머리는 뒀다 어디 쓰냐?” 밥상머리에서도 등굣길에도 그 말이 꼬리를 달고 다녔다. 어느새 귀에 딱지가 되어 내려앉았다. 일만 꼬이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내게 다가와 속삭인다. “머리 뒀다 어디 쓰냐?”
추운 겨울밤이었다. 한 소년이 장거리 여행을 위해 짐 보따리를 챙겨놓고 잠이 들었다가 큰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야간 공습경보가 울리더니 낮은 비행물체가 공격을 해오는 것이었다. 미사일까지 쏘면서 말이다. 모기(蚊)와의 전쟁이었다. 피를 보고야 전쟁은 끝났다. 그날 밤 잠에서 깨어나 홀로 ‘생각’에 잠겼다.
성경은 뭐라고 했나?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달게 주시는도다.” 그런데 또 다른 번역본은 이렇게 되어 있다. “사랑하는 자들이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보호해 주시고...”(시편 127편 2절) 어떤 번역본이 맞던지 간에 잠은 좀 자게 해 줄 일 아닌가?
잠 못 이루는 밤, 소년은 뒤척이며 생각에 잠겼다. ‘인간만큼 잔인한 존재가 또 어디 있던가? 남의 잘못에 대해 어김없이 소리친다. 회초리도 든다. 심지어 따귀까지 때린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고함지르고 자신에게 회초리 드는 사람 보았는가? 신은 이런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기 위해 그 날 밤 모기를 보내 잘못에 대해 침을 몇 방 놓으시고 그제야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고 뺨을 후려갈겨 정신 차리게 하시는구나.’ 생각한다. 그 소년은 다름 아닌 필자다.
이래서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산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고 만다.”고 한다. 모기조차 나를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 혹 누군가에게 잘못한 일은 없나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의 거울이 된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 나아가는 영성의 오솔길이 된다. 이래서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산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고 만다. 짜증내고 나면 짜증스런 생각만 따른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불평만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가 이번에는 아들에게 말한다. “모기를 하찮게 여기지 마라. 모기(蚊)에 벌레를 의미하는 ‘?’에다 글월의 ‘文’이 덧붙여진 이유가 뭔지 아니? 모기도 글을 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모기보다 못한 사람이 많다.”
소년은 금방 잠에 골아 떨어졌다. 얼마를 잤을까? 온몸을 물어뜯는 빈대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 몇날 며칠 잠을 설친 소년은 빈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빈대는 헤엄을 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책상을 구했다. 책상의 네 다리 밑에 사발(접시)을 고이고는 물을 부었다. 책상위에 이부자리를 폈다. 기막힌 수중(?)위의 침대였다. 빈대를 따돌린 소년은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또 다시 빈대의 공격 앞에 서야했다.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책상 다리를 살핀다. 기어오르는 빈대가 없다. 저 깊은 호수를 무슨 재주로 헤엄을 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몸에 붙어 있던 빈대? 소년은 머리를 굴리며 얼른 잠이 들지를 못했다.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던 소년은 눈이 휘둥그레져 벌떡 일어난다. 뜻밖에도 책상 다리를 기어오르지 못한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정에서 낙하할 준비를 하고 있지 뭔가? 소년은 무릎을 친다. “빈대도 머리를 써서 사는데.....” 소년은 그 작은 깨달음 하나로 대기업을 일군다. 그가 왕회장이라 불렸던 현대의 고 정주영회장이다. 그의 평상시 가장 큰 욕은 ‘빈대보다 못한 놈’이었다.
내 어머니는 어디서 주어 들었는지 밑도 끝도 없이 내게 지천을 퍼부었다. “대체 머리는 뒀다 어디 쓰냐?” 밥상머리에서도 등굣길에도 그 말이 꼬리를 달고 다녔다. 어느새 귀에 딱지가 되어 내려앉았다. 일만 꼬이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내게 다가와 속삭인다. “머리 뒀다 어디 쓰냐?”
추운 겨울밤이었다. 한 소년이 장거리 여행을 위해 짐 보따리를 챙겨놓고 잠이 들었다가 큰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야간 공습경보가 울리더니 낮은 비행물체가 공격을 해오는 것이었다. 미사일까지 쏘면서 말이다. 모기(蚊)와의 전쟁이었다. 피를 보고야 전쟁은 끝났다. 그날 밤 잠에서 깨어나 홀로 ‘생각’에 잠겼다.
성경은 뭐라고 했나?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달게 주시는도다.” 그런데 또 다른 번역본은 이렇게 되어 있다. “사랑하는 자들이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보호해 주시고...”(시편 127편 2절) 어떤 번역본이 맞던지 간에 잠은 좀 자게 해 줄 일 아닌가?
잠 못 이루는 밤, 소년은 뒤척이며 생각에 잠겼다. ‘인간만큼 잔인한 존재가 또 어디 있던가? 남의 잘못에 대해 어김없이 소리친다. 회초리도 든다. 심지어 따귀까지 때린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에 대해 고함지르고 자신에게 회초리 드는 사람 보았는가? 신은 이런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기 위해 그 날 밤 모기를 보내 잘못에 대해 침을 몇 방 놓으시고 그제야 자신의 종아리를 때리고 뺨을 후려갈겨 정신 차리게 하시는구나.’ 생각한다. 그 소년은 다름 아닌 필자다.
이래서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산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고 만다.”고 한다. 모기조차 나를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 혹 누군가에게 잘못한 일은 없나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의 거울이 된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로 나아가는 영성의 오솔길이 된다. 이래서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산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고 만다. 짜증내고 나면 짜증스런 생각만 따른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불평만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가 이번에는 아들에게 말한다. “모기를 하찮게 여기지 마라. 모기(蚊)에 벌레를 의미하는 ‘?’에다 글월의 ‘文’이 덧붙여진 이유가 뭔지 아니? 모기도 글을 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모기보다 못한 사람이 많다.”
어머니의 끝없는 잔소리에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시대가 달라져 그 말이 업그레이드 된 것일 뿐. 나는 안다. 내 아들이 손자 손녀에게 지껄이고 있을 말을.
“대체 머리는 뒀다 어디 쓰냐?”
“대체 머리는 뒀다 어디 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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