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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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방위조약의 체결은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1953년 10월 1일 한국과 미국 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오늘까지 한미동맹의 든든한 조약이 되었고 우리의 자유를 지키는 안전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조약의 체결은 이승만 대통령의 끈기와 뚝심, 그리고 외교력으로 얻어낸 결실이었다. 조약이란 상호수혜의 가능성 혹은 잠재적 가능성이 있을 때 체결되지만 우리가 미국의 방위에 기여할 가능성은 전무해 보이는 상황에서 체결된 것은 ‘새우와 고래의 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1951년 3월 이후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내외로부터 휴전에 대한 요구가 대두되었다. 특히 1952년 8월 20일 김일성은 중공의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를 통해 스탈린에게 휴전을 제안했으나 스탈린은 이를 받아드리지 않았다. 스탈린은 미국을 한반도 문제에 묶어두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탈린이 1953년 3월 5일 갑자기 사망하게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또 전쟁 종결을 공약했던 아이젠하워가 1953년 1월 20일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이승만은 휴전을 반대했다. 만일 중공군이 압록강 이남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휴전하면 국군이 단독으로라도 싸울 것이라고 엄포했다. 안전보장 없는 휴전을 반대한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클라크 유엔사령관을 통해 이승만을 설득했는데, 이승만은 휴전 수락 조건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휴전 성립 전에는 조약 체결은 불가하다고 단언했다.

휴전 협상의 최대의 난제가 포로송환문제였는데, 포로송환원칙에 대해서는 의견이 맞섰다. 북한은 강제송환을 요구했고, 유엔은자유송환을 주장했다. 유엔은 자발적 송환원칙, 곧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으나, 공산측은 포로의 의사와 관계없이 본국으로 반드시 돌려보내야 한다는 강제적 송환원칙을 고수한 것이다. 논란 끝에 유엔측이 야간 양보하여 강제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는 중립국송환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송환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럴 경우 상당수 반공포로들이 자유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이승만은 1953년 6월 18일 전격적으로 반공포로 2만7천여 명 석방을 석방했다. 이를 통해 미국을 압박했다. 결국 7월 12일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약속받았다.

휴전협정은 진척되어 7월 27일 조인됨으로서 3년 1개월간 계속되던 전쟁은 종식되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8월 8일 조약이 가조인 되었다. 10월 1일 공식적으로 체결된다. 이로서 북한의 남침과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주한미군의 주둔을 공식화하였다. 오늘과 같은 좌파 정권의 안보관과 대북정책을 고려할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한 든든한 초석이 아닐 수 없다. 주한 미군은 국방 안보의 중요한 자신이기도 하지만 군사적 가치는 3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 조약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 조약 체결을 기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기적 같은 사건을 통해 한국은 살아 남았고,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앞에서 소개한 일곱가지 기적같은 일로 우리나라는 급격히 팽창하던 공산주의 세력을 처음으로 저지했다. 공산주의의 출현과 확산은 20세기 최대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을 통해 공산정권을 탄생시킨 후 지난 100년 동안 공산주의가 창궐하여 한때는 세계의 3분지1을 점령하여 세상을 뒤흔들었다. 전제 군주국이던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소비에트 러시아가 탄생한 이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을 창설했고, 동유럽 국가들도 공산화된다. 이런 공산화의 물결 속에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고, 이어 베트남, 몽골, 캄보디아, 에티오피아, 쿠바, 북한 등이 잇따라 공산화된다. 러시아의 10월 혁명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과 중남미로 전파되어 공산주의는 전 대륙으로 확산되었다. 마지막 남은 남한까지도 공산화될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6.25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를 저지한 것이다. 우리나라 주변이 다 붉게 물들었으나 한국은 공산주의 세력을 물리치고 다시 자유와 평화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였고, 둘째는 미국과 같은 우방의 후원과 지원, 도움 덕분이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미국으로부터 큰 도움을 입었다. 한국전쟁에서 미군 4만5천명이 목숨을 잃었고, 5만여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은혜받은 자가 은혜 베푼자를 기억하는 것은 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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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교수의역사탐색]6.25 전쟁의 기적: 기적으로 살아남은 대한민국(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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