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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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로마서 1:17)

사도 바울이 전한 이 말씀은 복음의 핵심이자, 인류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은 역사 속에서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오해와 두려움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이 표현 앞에서 가장 깊은 고뇌를 했던 인물 중 한 명은 바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였다.

루터는 처음에 ‘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를 ‘죄인을 정죄하시는 기준’으로 이해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고, 그분은 완전한 의를 요구하신다. 그러나 인간은 그 의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앞에 선 인간은 필연적으로 심판받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닌가? 루터는 이 생각에 사로잡혀 깊은 절망에 빠졌다. 수도원에서의 고행, 철저한 자기부정, 끝없는 고백과 기도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러던 중 그는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을 다시금 묵상하는 가운데 놀라운 빛을 보았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말은 인간을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라, 죄인을 의롭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속의 은혜임을 깨달은 것이다. 루터는 이 순간을 “천국의 문이 내게 활짝 열리는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이 깨달음은 곧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렇다면 바울과 루터가 말한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단순히 하나님의 성품이나 공정성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행하신 구속행위를 뜻한다. 이 의는 율법을 완전하게 성취하신 예수의 순종과 십자가 죽음, 부활을 통해 역사 속에 드러났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그 의가 전가되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설명한 내용이다.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요,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의를 숨기지 않으시고, 동시에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복음의 기적을 이루신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정죄가 아닌 구원이며, 심판이 아닌 은혜다.

그러나 중세 신학은 이 복음을 점차 잃어버렸다. 특히 펠라기우스주의는 ‘하나님의 의’를 “인간의 행위에 따라 보상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만 이해했다. 이에 따르면,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가 아닌 인간의 협력과 공로의 결과물이 되어버린다. 이 사상은 중세 로마가톨릭의 신학으로 이어져, 종교개혁 이전까지 의롭다 함은 행위와 믿음의 결합으로 성취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바울은 이 잘못된 길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그는 의롭다 함은 오직 믿음으로, 그것도 인간의 것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온 ‘외래적 의’(alien righteousness)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선언한다. 빌립보서 3장 9절에서도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강조하며, 율법에서 난 자기 의를 단호히 버린다. 이 의는 단지 상징이나 선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제로 제공된 ‘구속적 의’다.

루터는 이 의를 ‘수동적 의(passive righteousness)’라고 불렀다. 인간은 이 의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다. 이 믿음은 자격이 아니라, 빈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의는 ‘외래적’이며, 철저히 ‘객관적’이다. 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련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하신 것이다.

 

로마서 5장에서 바울은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담의 불순종이 인류를 죄 아래 두었듯, 그리스도의 순종은 인류를 의 아래 두었다. 이것은 단지 윤리적 모범이 아니라, 대속적 구속의 실제이다.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를 대신해 드려진 것이며, 우리 안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밖에서 완성된 것이다.

이 의는 유한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순종과 죽음은 영원한 순종이다. 그러므로 그 의 또한 영원한 의이며,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가치를 가진다. 인간은 결코 그 의를 스스로 만들 수 없고, 과거의 불의를 스스로 바로잡을 수도 없다. 오직 이 ‘외래적 의’가 죄인을 살리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만든다.

오늘날도 이 복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나님의 의는 여전히 모든 죄인에게 열려 있다. 그것은 과거에나 필요한 구원의 원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삶과 죽음, 소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인간들에게 유일한 피난처다. 어떤 죄도, 어떤 실패도, 어떤 상처도 이 의보다 크지 않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만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인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의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고백은 루터를 일으킨 고백이었고, 바울이 외친 복음의 핵심이었으며, 오늘날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진리이다. 이제 우리도 이 의를 붙잡고 살아야 한다. 율법이 아닌 은혜로, 내 공로가 아닌 그리스도의 공로로, 내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 신양생활을 해야 한다.

롬1:16~17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δικαιοϬύνη γὰρ Θεού ἐν αὐτῷ ἀποκαλύπτεται ἐκ πίστεως εἰσ πίστι ν,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ὁ δὲ δίκαιος ἐκ πίστεως ζήσετα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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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문 목사]하나님의 의(δικαιοσύγη Θεο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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