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11(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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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아는 목사님은 나이 서른에 야간 대학을 다녔고, 서른다섯에 신학을 시작하고 불혹의 나이 사십이 되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지방에서 대형교회로 성장시키고 목회가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할 즈음에 그 목사님은 그 사역의 폭을 더 넓히고 싶어 일찍 은퇴를 선언하고 전국 방방곡곡 미자립교회를 찾아 자비량집회를 시작했다. 모두가 바보라고 할 때 그는 바보 사도 바울의 흉내라도 내고 싶어 그 고난의 길을 자초했다. 대부분의 동역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는 긍정적 삶의 교훈을 이야기한다. 시편 18편 1절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를 들려주고, 고린도전서 15:10절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한다.

 

하나님이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오직 주님으로 달음질했다. 청년의 때에 먹지 못하고 병들어 쓰러질 때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회의(懷疑)를 느꼈다. 벌레만도 못한 존재라는 사실 앞에 통곡을 해야 했던 아픔도 있었다. 그러나 그 절박한 상황에서 어둠을 밀어내는 빛의 말씀이 들려오면서 그는 다시 자기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쁨에 몸을 떨면서 감격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43:1)”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된 것,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불렀다는 사실 앞에 그는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라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신하면서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병든 몸은 건강으로 바꾸어졌고 가난한 생활은 마음의 부요에서 삶의 부요로 나아가게 되었다. 행복한 목회를 마무리했고 은퇴 후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한 주일도 쉼 없이 말씀사경회를 인도한다.

 

그 목사님은 종종 ‘노만 빈센트 필’목사님의 독수리와 닭 이야기를 들려준다. 양계장에서 부화되어 양계장에서 자란 독수리가 자기가 닭이 아니고 독수리임을 깨닫고 날개에 힘을 주어 하늘 높이 날아오른 것처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존귀한 자라는 사실을 확신할 때 엄청난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 자신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존재가치를 깨닫게 되었을 때, 세상 그 무어도 부러울 것 없는 오직 주님으로 삶은 희망과 행복감으로 출렁이게 되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처럼 인간에게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 가능성을 계발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적으로도 증거되는 것인데 독일의 뇌학자 ‘에코노모'박사는 인간의 대뇌는 무게가 약 1,500g 이며 이는 핑크색 제지와 같은 고체인데 두께가 평균 3mm이고 그 세포 수는 136억 5,300만개가 되며 그 한 개의 세포는 소형 트랜지스터 1개의 성능과 같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노이만‘ 박사는 이 세포와 트랜지스터의 비교 논문에서 뇌세포는 트랜지스터보다 속도가 1만~10만배 빠르다고 발표한바 있다. 이와 같은 뇌를 인간이 평생 얼마나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학자들 간에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누구도 1%의 머리를 개발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 보편적인 결론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라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가능성을 계발할 수 있어야 한다.

 

꿀벌이 1파운드의 꿀을 채취하기 위하여 5만6천 송이의 꽃을 찾아다닌다. 가령 클로버 꽃인 경우는 한 송이 안에 60개의 튜브(flower tube)가 있으므로 벌은 336만회의 작업을 거쳐 1파운드의 꿀을 얻는 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과정의 면접 시험 시간에 시험관은 까만 점 하나를 찍은 백지 한 장을 벽에 붙이고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응시자는 까만 점이 보인다고 답을 하는 가운데 몇 사람만 백지가 보인다고 답을 하였다. 면접관이 말하기를 “여러분은 왜 이 작은 점 하나만 보는가? 이 큰 백지는 보이지 않는가?”라고 교훈하였다.

 

실망을 잘 하는 사람은 흔히 자신의 속을 본다. 인생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사람은 흔히 자신의 과거를 본다. 줄곧 남만 따라 다니는 사람은 흔히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무슨 일을 하다가 중도 하차하는 사람은 흔히 자신의 눈 한치 앞만 본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흔히 모든 사물을 대강 본다. 좌절하고 절망을 잘 하는 사람을 흔히 보려고 하지 않는다. 보는 것도 훈련이다.

 

영어 속담에 ‘The parade passes and dogs bark'(행렬은 지나가고 개들은 짓는다.)는 말이 있다. 일하는 사람과 비평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도 되고, 몇몇 말꾼이 시끄럽게 해도 역사의 행진은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 담긴 속담이다. 역사의 키를 잡고 이끌어 가는 사람은 떠버리가 아니라 자기의 길을 조용히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여학생 둘이 소감을 말했다. 한 여학생은 “어쩌면 산이 그렇게 더러워요. 쓰레기는 여기저기 쌓여있고 파리는 왜 그렇게 극성이예요.” 다른 여학생이 말했다. “산에서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들국화를 보았어요. 새소리는 마음을 행복하게 했어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어떤 사고(思考)로 보고 느끼는가의 차이다.

 

‘버클러’ 박사가 신학교 교수로 재직할 때 헬라어 최고점을 받은 학생이 시각 장애자였다고 했다. 그에게 비결을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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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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