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동 목사는 왜 국가유공자로 지정 될 수 없었을까?
신사참배 반대 운동이 독립운동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
고신 69회(2019년) 총회는 경남김해노회가 헌의한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른 출옥 성도들(한상동 목사)의 국가 유공자 지정의 건’을 받기로 결의한 바 있다. 당시 총회는 ‘국가 유공자 지정을 위한 특별위원회 설치’와 ‘총회 산하 교인 서명’, ‘신사참배 투옥 기념주일 제정’, ‘순교자 기념관 건립’ 등을 총회 임원회에 맡겨 추진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2020년 2월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는 “활동내용이 독립운동 성격이 불분명”이라는 ‘국가유공자 불가 판정’을 내렸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이 독립운동의 성격이 아니라 종교행위로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때가 한상동 목사 국가유공자 지정 두 번째 불가 판정이었다.
당시 한상동 목사 유가족과 함께 국가유공자 지정을 위해 노력해 온 이봉수 장로(김해 상동교회)는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한 인사들이 2천여 명이고, 이중 50여 명이 순교를 한 상황에서 여기에 대한 적절한 기준이 없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국가보훈처가 충북대학에 용역을 의뢰해 이 문제에 대한 기준을 세운 바 있다”며 “첫째는 순교자, 둘째는 일본법원 판결문 속에 ‘민족운동’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는 자, 마지막으로 신사참배를 조직적으로 한 지도자급이다. 한 목사님의 경우 여기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례에 포함되는데, 보훈처의 불가 판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 ‘국회 입법’으로 국가유공자 지정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봉수 장로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입법 추진을 위해 모 국회의원과 상당수 교감이 오고갔다. 고신총회도 입법을 위해 10만 명 이상 서명을 약속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한상동 목사가 국가유공자로 지정 되었다는 소식은 전무하다.
“총회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총회의 전폭적인 지지약속에도 당시 한상동 목사가 국가유공자로 왜 지정되지 못했을까? 최근 이봉수 장로는 “개교회의 관심이 부족 했던 게 큰 이유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봉수 장로의 말을 정리하면 2019년 말 고신총회가 약 3개월간 서명운동에 나선 바 있다. 이봉수 장로와 유족측은 10만 명 이상을 기대했지만, 3개월간 서명운동의 결과는 190개 교회, 16,441명에 불과했다. 이봉수 장로는 “2천여 교회가 넘는 고신총회가 겨우 190개, 16,000여명이 서명했다는 소식에 솔직히 충격 받았다”며 “한상동 목사님이 설립한 00교회의 경우, 한명도 서명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총회의 전폭적인지지 약속에도 불구하고 개교회 차원의 관심은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총회가 결의한 ‘국가유공자 지정을 위한 특별위원회 설치’는 ‘고신역사와순교자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에 넘기면서 이봉수 장로를 위원으로 위촉하는 선에서 마무리했고, ‘순교자기념관 건립’도 신대원 고신역사기념관 내 한 부분으로 추진했으며, ‘신사참배 투옥 기념주일’(6월 둘째주)도 2020년과 2021년만 두 해만 시행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2021년 국회 입법 추진에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는 “입법추진을 위해 최소 5만 명 이상의 서명이 필요했는데, 당시 유족은 10만 명 이상을 서명으로 받아 줄 것을 (총회에)요구했고, 박영호 총회장도 10만 명 이상 서명을 약속했다. 하지만 불과 14,000명 수준이었다”며 총회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입법추진이 진행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학계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한상동 목사의 유족인 한기영 장로는 “아버지가 국가유공자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사학계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장로는 “그동안 국가보훈부 관계자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분들(개인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신사참배’ 행위를 독립운동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그 분들 공통으로 하는 말이 ‘보훈심사위원회’에 참여하는 사학계(역사학자)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종교행위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세하다는 것이었다.
한 장로는 “신사참배는 한국인의 황민화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강요되었기에, 이를 거절하는 행위 자체가 직접적인 '항일 행위'였다”며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한국인의 민족적 자존심과 정체성을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출이었음을 사학계가 인정할 수 있도록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국교회의 관심 필요와 재도전
작년 복음병원 설립에 관여했던 전영창 선생(거창고등학교 설립자)이 ‘건국포장’을 받아 국가유공자로 지정됐다. 전영창 선생은 1940년 봄부터 일본 신호시 신호중앙신학교에 재학 중 동급생들과 함께 조선독립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민족의식 고취, 독립실행 방안⦁협의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이력이 있다.
전영창 선생의 국가유공자 등재에 힘입어 한기영 장로와 이봉수 장로도 다시 한상동 목사 국가유공자 지정을 위해 3번째 도전을 준비중이다. 이봉수 장로는 “지난번 교단의 지원 부족은 코로나 영향이 매우 컸던 것 같다”고 아쉬워하면서 “교단의 설립자인 한상동 목사님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기도가 필요하다. 목사님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되면 출옥성도님들의 국가유공자 지정도 용이하기 때문에 이번에 꼭 지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기영 장로도 “아버지는 생전 세배를 받지 않으셨다. 그만큼 신사참배에 대한 트라우마가 크셨던 분이다. 아마 살아계셨다면 ‘하나님만 아시면 되지, 뭐가 중요하냐’며 국가유공자 지정에 반대하실 분이다. 하지만 아버지 개인의 영달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신사참배 반대 운동이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순수성을 지키려는 종교적 저항운동이자 황국신민화 정책에 맞서 민족적 정체성과 정신을 수호하려는 강력한 민족운동이었음을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한국교회와 고신교단을 위해서라도 신사참배 반대 운동이 독립운동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