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훌륭하신 교장 선생님 한 분 때문에 ‘한 사람의 중요성’을 어릴 적부터 나름대로 기억하면서 성장하고 살아온 것은 큰 축복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관례 중 하나가 매주 월요일 아침 전교생 조례가 운동장에서 열리는데 교장 선생님의 훈시(訓示)가 늘 있었다. 6년 동안 방학을 빼면 거의 240여 회 훈시를 들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확실하게 기억하면서 평생의 교훈으로 삼고 있는 선생님의 훈시는 딱 한 가지 ‘한 사람의 중요성’이다.
프랑스 농촌지역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 임기를 마치고 전근을 가시는데 그동안 정들었던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이 재배하여 만든 포도주를 ‘송별선물’로 선생님께 드렸다. 교장 선생님은 감사인사를 하면서 포도주병들을 마차에 싣고 마을을 떠났다. 새 임지에 도착하여 짐을 풀어 정리를 한 후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선물로 받아온 포도주병 한 개를 열었는데 뜻밖에도 그냥 맑은 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농사일로 바쁘다보니 실수로 빚어진 일이겠거니 여기고 다른 병을 따보니 역시 맹물이었다. 의아해하면서 선물 받은 나머지 병들을 다 열어보았다. 이런 것을 기적이라 할까? 우연이라 할까? 실제 포도주병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맑은 물 병들이었다. 그 순간 교장 선생님과 가족들의 심경이 어떠하였을까?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우리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 한 사람쯤 적당히 하거나 속여도 괜찮을 거야. 다른 사람들이 잘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 한 사람이 나쁜 생각을 가지는 순간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을!” 그 시절이 근 65년 전이지만 초등학교 때 그 날 들었던 교장 선생님의 훈시는 지금까지 내 평생의 교훈으로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다. 실로 초등학교 6년 과정에서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이라고 늘 감사하고 있다.
6.25 제75주년(1950.6.25.-2025.6.25.)을 맞으면서 나는 특별한 두 인물을 묵상한다. 한사람은 김종오 장군(1921-1966)이다. 역사책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950년 6.25전쟁 초기, 국군은 기습남침한 북괴군에 연전연패 하면서 38선을 버리고 한강까지 후퇴하고 있을 때 유일한 승전보가 들려왔다. 춘천지구를 지키던 김종오 대령의 6사단이 9,300명의 병력으로 4배나 많은 3만 7천명 되는 북한2군단(3개사단과 1개 모터사이클 쾌속연대)의 압도적인 대규모 침공을 막아내고 승리하였다. 북한 2군단은 춘천을 점령한 후 그 기세를 몰아 서울을 포위 공략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북한군 최정예 부대였다. 압도적 병력차이, 무기 열세, 짧은 방어선이라는 치명적 단점에도 6사단은 김종오 사단장(당시 대령)의 전투지휘 아래 결국 승리하였다” 무질서하게 맥없이 패퇴하던 다른 사단과 달리 질서, 사명감, 치밀한 전략, 애국심으로 훈련된 6사단은 풍전등화의 우리 조국을 구해낸 일등공신이었다. 역사가는 다시 강조한다. “이 사람마저 졌더라면 미국이 참전하기 전 이미 대한민국은 패망하고 끝났으리라” 훗날 6.25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메튜 리지웨이 장군도 이런 회고를 남긴다. “다른 한국군 부대들도 6사단장 김종오 대령처럼 준비했더라면 적의 공격을 지연시킬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또 한 사람은 손원일 해군 제독이다. 1948.8.15.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으나 손 제독에게 맡겨진 한국해군에는 전투함이 전무하였다. 나라의 앞날을 염려하던 손 제독은 전투함 한 대 만이라도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1949, ‘해군전투함 구입 갹출위원회’를 구성하고 해군 간부들부터 모금 운동을 펼쳤다. 부인 홍은혜 여사는 장교부인들과 삯바느질까지 하면서 기금마련에 동참하였다. 눈물겨운 우여곡절 과정 끝에 미 해군이 폐기해체하려던 함정 한 척을 깎아서(2만불 요구) 1만 8천불에 구입, 민족의 영산 백두산(白頭山)을 생각하여 손제독이 직접 ‘백두산함’이라 이름 지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미 해군에서 이미 그 함정 이름을 ‘Whitehead’로 부르고 있었다니 신기하다. 우리 국민이 알아야 할 것은 북한은 6.25 남침 전에 미리 북한 「해군육전대 600명」을 무장 수송선에 태워 부산항을 기습침투, 부산을 장악하기 위해 6.25 밤 9시경 부산 앞바다에 도달하였다. 북의 이 계획이 성공했더라면 우리나라는 어찌 됐을까? 미약한 육군은 모두 38선을 중심으로 배치돼 수도 서울을 방어하고 있었으니 북의 특공대가 남쪽에서 부산·경남지역을 기습 공격하여 대혼란을 일으켰다면 대한민국의 운명은 비극으로 끝나버릴 수 있었다. 손 제독의 선견지명(先見之明)으로 눈물겹게 장만한 백두산함은 마침 그 시간 남해안을 순찰하던 중 괴상한 정체불명의 선박이 부산항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급보를 받고 급거 부산항 쪽으로 항해, 마침내 북의 괴선박을 발견하였고 용감하게 백병전까지 전개하여 마침내 괴선박과 북한해군육전대 600명을 수장시켰다. 손 제독의 혜안으로 마련된 백두산함을 이끌고 부산항을 지켜낸 그 당시 해군 전투지휘관은 최용남 함장과 최영섭 대령(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선친)이다. 최영섭 당시 갑판사관의 전투무용담은 혁혁하였다. 한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사실은 나라를 구한 6.25의 그 영웅 손원일 해군 제독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손정도 목사의 장남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이토록 아름다운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나라를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구해낸 눈물겨운 역사의 뒷면에는 <한 사람의 위대한 헌신과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깊이 주목해야 할 것이다(요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