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2-06(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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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사람에게는 세 가지 싸움이 있다. 첫째는 자연과의 싸움이요 둘째는 남과의 싸움이요 셋째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라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과 선물로 주신 아름답고 소중한 자연을 「싸움이나 정복의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은 썩 좋은 발상은 아니다. 물론 더위, 추위, 가뭄, 홍수 등을 극복해내는 일이 여간 만만치 않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플라톤이 인생을 <자기와의 싸움>으로 이애하고 있는 것은 옳은 지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아라!」고 하였다. 우리는 자신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리고 신앙의 연륜이 쌓여갈수록 온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3~5). 과연 그 누구도 자신을 변명할 수 없도록 우리의 정곡을 찔러 주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런 솔직한 말씀은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해주실 수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너무나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해주면 말은 맞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 누구도 완전한 사람이 없으며 다 같이 불완전하면서 남을 향해 충고하고 책망하기란 여간해서는 용기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가급적이면 선생이 되지 말라!」 고 충고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3:1~2). 그럼에도 우리는 성경의 교훈을 가지고서 서로 나누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을 가지고 논(論)하면 그나마도 우리는 승복을 하고 겸손히 그 교훈을 따르고자 하는 일말의 선한 양심이 있음을 알고 있다. 오늘은 먼저 내 안에 숨어 있는 <다섯가지 적>을 드러내고자 한다.
1. 욕망이라는 적이다.
   우리는 생래적으로, 출생하면서 ‘본능적 욕망’을 가진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에덴동산에서 우리 조상 아담이 <욕망의 포로>가 돼버렸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포로가 돼버렸다. 그 결과 아담의 후손으로서 우리 또한 <욕망의 포로>가 돼버렸다. 이것을 <욕망의 전차>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전차는 방향도 모른 채 좌충우돌 하면서 세상을 소란케 하면서 자신을 파멸로 이끌어간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인이지만 날마다 아니 순간순간마다 <욕망이라고 하는 무서운 유혹>에 직면하면서 살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로마서 7장 18절이 주는 말씀을 들어보자.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대부분의 욕망은 우리를 <심각한 파멸>로 몰아간다. 그러므로 욕망은 무서운 것이다. 사람은 여러 가지 힘든 환경 때문에 고통당하기도 하지만 <자기 내면의 죄와 욕망> 때문에 혼돈에 빠지고 크게 고통 한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우리로 시험(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불의하고 타락하고 위험한 이 욕망들로부터 벗어나려면 우리 마음속에 거룩한 소원을 가져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본능으로서의 욕망’도 있으나 동시에 ‘거룩한 소원’도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거룩한 소원 쪽으로 우리의 열망을 불러일으키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소원을 도와주신다(빌2:13). 우리의 성향이 사악한 쪽으로 쉽게 경사되지만 ‘거룩한 소원’쪽으로 열망하면 그 쪽으로 우리의 성향(性)이 발전한다. 그러므로 잠언 4장 23절에서는 “무릇 지킬 만한 것 중에 너희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한다. 그리고 욕심을 줄여야 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지 아니한가? 우리는 자주 자주 <절제의 은혜>를 성령님께 간구해야 한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 일컬어 사람의 욕심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하지 않는가! 바닷물은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더 심해질 뿐이다.
    우리가 이 위험한 욕망을 줄이려면 우리의 마음속을 고상하고 신령한 것으로 채워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것이다. 우리 심령 속에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영적인 갈급함이 내재되어있다. 이 갈급함의 빈 자리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채우면 된다. 시편 39편 7절에서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다윗은 노래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을 읽어보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하나님을 사모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자리하실 때 우리 영혼은 한없는 평강을 누리면서 만족함을 얻는다(롬14:17, 시4:7, 말3:17)(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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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우리가 극복해야 할 다섯가지 적(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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