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2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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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최대의 시인 롱펠로우는 미국의 보든 대학 졸업 후 약 3년 동안 유럽에 유학하고, 귀국 후 모교의 근대어학 교수가 되었다. 그 후 1835년 하버드대학 교수가 되기 전에 또다시 유럽으로 갔으며 이때 첫 번째 부인을 잃었다. 스위스에서 ‘프랑세즈 애플턴’을 발견하고 그녀를 산문 이야기 <하이페리온>의 여주인공으로 묘사하였다가 그녀의 반감을 사기도 했으나 43년 드디어 그녀와 결혼하였지만, 이 두 번째 부인도 61년 불행한 사고로 불타 죽었다. 롱펠로우는 그렇게 인생의 쓰라린 경험자였다. 롱펠로우가 75세가 되어 그의 임종이 가까웠을 때 한 기자가 물었다.

"선생님은 두 부인의 사별뿐 아니라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오신 것으로 아는데,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시들을 쓸 수가 있었습니까."

 

이에 롱펠로우는 마당에 보이는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 나무가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저 사과나무는 몹시 늙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립니다. 옛 가지에서 새 가지가 조금씩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도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새 생명을 계속 공급받아 인생의 새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렇다. 그것은 롱펠로우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그렇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은 그 삶이 날마다 새로워지고 풍성해진다. 부활의 세계는 지칠 줄 모르는 생명의 세계다. 그래서 부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삶을 ‘더 좋은 삶을 위한 거룩한 몸 짓’이라 하는 것이다.

 

오래전 울산에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참으로 귀한 장로님을 만났다. 아직도 그분의 아름다운 신앙과 삶을 잊지 못한다. 그분은 월남전에서 양손을 다 잃은 전상자였다. 전쟁 중에 진지에 포탄이 떨어졌다. 떨어진 포탄을 쓰러 안는 순간 양팔은 날아 가버렸고 배는 터져 창자가 흘러내렸다. 동시에 동료 전우들은 살았다. 누구도 살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을 못 한 상황에 긴급 후송되어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했다. 그 후 신앙생활을 통하여 그 아픔을 신앙으로 극복하고 장로가 되어 모든 사람에게 소망을 주고 생명을 주는 거룩한 몸짓으로 오늘도 사역하고 계셨다. 함께 식사하면서 장로님의 숟가락과 젓가락 움직임을 보았다. 장로님의 양쪽 의수(義手)는 아주 민첩하게 밥과 반찬을 집어 올려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장로님 의수를 잡고 여쭈어보았다. “어떻게 열 손가락처럼 그렇게 민첩하게 손놀림할 수 있습니까?” 장로님은 빙긋이 웃으시면서 의수를 보여 주셨다. 손가락 역할을 해 주도록 만들어진 의수(義手)는 강한 쇠붙이였지만 장로님은 그 의수로 글도 쓰시고 그림도 그리고 못하시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함께 하신 담임 목사님은 한마디 거들어 주셨다. “P 장로님은 모든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비록 장애인이지만 누구보다 밝고 아름다운 삶을 엮으시면서 교회와 사회에서 존경받는 장로님으로 행복하게 살아가시는 그것은 오직 장로님의 중심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충만 때문입니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오늘의 삶이다. 그것은 진실로 더 좋은 삶을 위한 거룩한 몸짓이었다. 사지백체 건강함을 가지고도 늘 불평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정신적 인격적 장애인들이 많은 오늘에 P 장로님의 미소는 목사의 가슴에 깊이 남아있다.

 

비가 많이 쏟아지는 그곳에서는 식물들도 더욱 푸르게 자라난다. 안개가 짙은 섬은 에메랄드가 생성되기에 알맞아 에메랄드의 섬이 된다. 우리 인생에도 고난과 슬픔의 안개가 짙을수록 에메랄드 같은 아름다운 심령을 얻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 깊이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제비가 겨울 동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겨울 동안에 꽃나무가 죽어서 꽃이 피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먹구름이 소나기를 내리게 하며 사방이 어두워 캄캄해진다고 해도 우리는 태양이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봄이 오면 제비는 다시 오고, 봄이 오면 꽃은 다시 핀다. 이 땅에 새 생명을 키우기 위해 잠시 비가 내렸을 뿐이지 태양은 언제나 하늘에 떠 있다.

 

나는 뇌신경암 4년차 투병 중이다. 그런데도 1년 52주 한주도 쉼 없이 부흥사경회를 인도한다. 내 삶의 한편에는 아프고 지치고 벅찬 시간도 있지만 그보다는 감사와 평안과 행복한 삶이 현재진행형이다. 그것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부활 신앙이 거룩한 몸짓의 삶을 연주하게 한다.

 

농어촌 산골 개척교회를 방문하여 말씀 사역을 하노라면 잠자리가 불편하고 식사가 만만치 않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운전도 순조롭지 않다. 그러면서 요즈음 내 마음이 흔들리는 일들이 있었다. 사역을 멈추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 교회 목사님의 전화 한 통이 또 나를 다음 마을로 가야 함을 깨닫게 했다. “서목사님, 우리 교회 78세 할머니가 서목사님의 방송 설교를 듣고 저를 찾아와 서임중목사님 설교를 생방송으로 듣고 천국 갔으면 원이 없겠다 하셨습니다.”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눈시울이 젖었다. 고 방지일 목사님이 101세에 포항중앙교회 주일 설교를 마치시고 목양실에서 “하나님, 말씀의 종 서임중목사는 녹슬어 사용하지 못하는 종이 아니라 닳아서 사용할 수 없는 그날까지 귀히 사용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축복 기도를 해 주신 시간을 묵상하면서 오늘도 사역의 걸음을 옮긴다. 그것은 ‘더 좋은 삶을 위한 거룩한 몸짓’이리라.

오늘도 롱펠로우의 ‘인생 찬가’의 한 부분을 읊조리면서 주님의 나귀 되어, 또 다음 마을을 향해 걷는다.

 

<우리가 가야 할 곳, 또한 가는 길은 향락도 아니요, 아픔도 아니다. 저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그것이 목적이요 길이다. 활동하라. 살아있는 현재에 활동하라. 가슴 속에는 심장이 있고, 머리 위에는 하나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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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더 좋은 삶을 위한 거룩한 몸짓(부활 신앙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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