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25(금)
 

애완견 추도식 요청하는 성도, 목회자는 어떻게 할까?

애완동물의 장례식,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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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애완동물 양육 인구 1500만 시대로,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펫팸족’이 늘고 있다. ‘펫’(Pet)’과 ‘패밀리(Family)’를 합친 신조어인 펫팸족이 증가하면서 관련 시장이 급증하고 있다. 애완동물용 미용, 의류, 유모차는 물론 보험, 장례 서비스까지 등장했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펫시장 규모는 2024년 4조9천억원에서 2027년 6조55억원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교회에서도 예배시간 중 애완견을 돌봐주는 사역팀이 있는 교회도 있고,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이 있는 교역자를 찾기도 하는 상황이다. 애완동물,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바라보아야할지 저서 <동물신학>(세움북스, 가정호, 송영목, 홍석진 저)의 저자인 가정호 목사(세대로교회)와 송영목 교수(고신대)가 대담을 진행했다.

 

가정호: 지난 2024년 12월 31일자로 <동물신학>이라는 책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동물신학’이라는 명칭에 대해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영목: 좋은 질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물신학’이라는 이 명칭이 정당한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목사님과 장로님께서 책 제목 때문에 불편을 느끼신 것 같았습니다. 동물을 신격화나 인간화할 의도를 배제한 채, 하나님께서 동물에 관하여 어떤 견해를 가르치시는가를 성경적으로 탐구하는 시도라면 이 용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가정호: 일부 성도들이 예배당에 내가 좋아하는 동물을 같이 데리고 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수 없을까, 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인데 교회가 허용해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흐름들이 영국, 미국 교회에서 발생하고 실제로 애완견을 데리고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도 이런 부분에 대한 선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송영목: 심방이건 기도이건 공 예배이건 간에, 성도가 하나님에게 집중하려면 애완동물이 그런 모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리 조치하는 게 마땅합니다. 그런데 동물친화주의자들은 동물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께 영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보면서 몇 가지 근거 구절을 제시합니다(시 145:21; 사 43:20; 66:23; 계 5:13). 그런데 여기서 ‘모든 육체’(시 145:21; 사 66:23)는 영혼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이라는 구원을 묘사하는 맥락에서, 동물이 하나님께 명예를 돌린다는 묘사는 상징적 의미로 파악해야 합니다(사 43:14-21). 하나님은 성도에게 성령 충만한 실체의 예배를 요구하시므로(요 4:23-24), 하나님과 교회 간의 쌍방 언약을 갱신하는 예배를 드리는 공간에 동물을 데리고 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다만 교회 한쪽 공간에 애완동물을 보관하는 것은 괜찮겠지만 예배당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주체로서 함께 참여하는 것은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해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정호: 목회적으로 보면 실제로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좋아하는데 옆에 있는 사람은 이 개가 언제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공포심도 있고 또 예배 중에 개가 짖을 수도 있잖아요. 예배 시간에 강아지가 짖는다면 예배에 집중할 수 없기에 여러 가지 상황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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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호: 그럼 교수님, 동물을 위한 기도는 가능한가요?

송영목: 목회자라면 목양하는 성도들의 영혼을 돌봐야 됩니다. 그런데 영혼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라면 성도의 직장을 위하여, 성도의 건강을 위하여, 재산을 위하여, 사업과 직장을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당연히 해야 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회사원보다는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러면 성도의 가축을 위하여 소, 개, 돼지 등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안전하게 건강하도록 그렇게 마땅히 기도를 해야 되겠죠. 그래서 성도가 가축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 할 때 저는 기도할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단 그게 목사님만 해야 될 일은 아니죠.

‘반려동물’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교회의 공식 기도 제목에 병든 애완동물의 이름이 올라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교인은 자신의 애완견 1주기 추도식을 목사가 거행해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가정호: 네. 저도 겪었습니다. 어떤 성도님께서 애완견이 죽은지 1년이 되어 추도예배를 드리고 싶은데 인도해 줄 수 있겠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많이 우울하고 힘든지 소위 펫로스증후군(애완동물의 죽음으로 겪는 상실감과 우울증 등 정신적 어려움)의 증상이 있는지 여쭈었더니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추도식은 그렇고 집사님의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가정호: 교수님, 동물도 구원받을 수 있나요?

송영목: ‘구원’을 예수님의 구속 혹은 대속을 통한 총체적 회복이라고 정의한다면, 그런 구원의 대상은 동물이 아니라 교회로 제한됩니다. 동물을 새 창조와 회복과 돌봄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닐까요? 하나님 나라는 세 요소 즉 하나님의 통치 주권, 그 통치를 받는 대상인 교회, 그리고 통치가 이루어지는 영역으로 구성됩니다. 마지막 요소인 ‘영역’은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만유입니다(엡 1:10).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서 동물의 영역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동물도 당연히 포합됩니다. 많은 개혁주의자가 동의하는 신칼빈주의를 고려한다면, 그리스도인은 ‘영역 선교’(sphere mission)을 열심히 수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물은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대상은 아닙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요나서에 나타난 니느웨의 동물을 예로 들면서, 동물을 회개의 주체로 격상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가정호: 애완견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일부 성도들이 나중에 천국에 갔을 때 내가 사랑하는 애완견도 함께 천국에 있길 바라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동물도 부활하고 천국에서 만날 수 있는지요?

송영목: 악어와 같은 동물을 숭배했던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와 개 그리고 영양(gazelle)과 같은 애완동물은 미라로 처리되어 죽은 주인과 함께 매장되었습니다. 이집트의 일부 파라오들은 애완견을 위해 무덤을 세워 명예를 돌리기도 했습니다. 애완동물은 저 세상에서도 길동무처럼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물은 죽은 후에 천국에 가지 않지만, 거기서 동식물은 새롭게 창조될 것으로 보입니다. 동물 중에서 성경에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정관사를 동반한 남성 복수 주격 명사 ‘그 개들’(oi` ku,nej)은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를 상징하는 새 예루살렘성 바깥에 있습니다(계 22:15). 여기서 사도 요한은 일반적이고 문자적인 ‘개들’이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을 독점할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가 아니라고 가르칩니까?(계 11:11; 20:6). 아닙니다. 계시록 22:15의 ‘그 개들’은 소아시아 7교회를 박해했던 율법주의적 유대주의자를 은유적으로 가리킵니다(신 23:18; 빌 3:2; 계 2:9; 3:9). 신약성경에 42회 나타나는 여성 명사 ‘부활’(avna,stasij)은 예수님과 사람에게만 적용되지만, 동식물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요 5:28-29; 11:25 등).

 

가정호: 최근 동물 장례문화도 급변하고 있습니다. 개나 고양이는 물론 키우던 햄스터, 파충류와 같은 소형 동물의 장례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전국에 애완동물 장례식장까지 생기고 있는데 동물의 장례식,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영목: 장로교회의 표준문서 중 하나인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1644) “XIII. 죽은 자의 매장에 관하여”에는 ‘장례식’ 혹은 ‘장례 예배’라는 용어가 나타나지 않으며, 단지 ‘죽은 자의 매장’이라 부름으로써 교회의 예식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하물며 동물의 사체를 (소각) 처리하는 행위를 ‘장례 예배’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일본에서 애완동물이 묻힌 곳에 함께 매장되기 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도쿄, 오사카, 홋카이도, 후쿠오카 등에서 인간과 동물의 동반 장묘가 허용되었고, 이용객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이런 요구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반려동물 부의금’에 대한 찬반 논쟁도 일고 있습니다. 다만 펫로스증후군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기독교인들이 이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잘 도와주고 위로해야 합니다.

 

가정호: 앞서 말씀드렸듯이 외국에서는 애완동물을 교회에 데리고 와서 함께 예배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성찬식에도 참여한다고 하는데, 동물에게 세례나 성찬이 가능합니까?

송영목: 미국 성공회의 경우, 동물친화적인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예를 들어, 동물을 교회당 안으로 데리고 와서, 개에게 빵과 포도주 대신에 비스킷(dog biscuit)을 제공하고 복을 빕니다. 미국 성공회 목회자 가운데, 세례교인이 아니지만 성찬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을 고려하여, 모든 동물에게 성찬식이 개방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초대교회의 그림에 성찬식에 참여한 사도의 발 근처에 개들이 있었던 사실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세례를 받지 않은 교인에게 성찬을 허락하는 ‘열린 성찬’은 성찬의 취지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역사로 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에 세례를 받은 성도만 주님의 잔칫상인 성찬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11:28). 하물며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없는 동물에게 성찬을 허용한다면, 주님께서 베푸시는 거룩한 식탁을 모독하는 범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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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호: 교수님, 앤드류 린지는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동물이 존중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하는데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영목: 먼저 앤드류 린지(A. W. Linzey, b. 1952, Ph.D., D.D., Hon.D.D.)를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성공회 사제로서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윤리, 신학, 동물복지를 가르치며 ‘동물윤리를 위한 옥스퍼드센터’(2006)를 설립했고, 동물권 운동가이자 채식주의자입니다.

피터 싱어는 교회 밖에서, 그리고 앤드류 린지는 교회 안에서 동물을 옹호합니다. 피터 싱어는 동물에게 쾌고감수능력이 있다고 보면서 동물을 인간의 억압에서 해방하려 합니다. 앤드류 린지는 동물을 향한 관대함의 윤리를 넘어 ‘동물성경’과 동물 예전까지 도입하자고 주장합니다.

린지를 필두로 하여, 동물신학에서 동물복지와 동물 권리를 긍정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목소리의 전제와 의도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의 성경 및 신학적 근거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동물해방주의자나 동물권 옹호자는 애완동물의 부정적 특징을 언급하기를 꺼리면서 인간에 의해 고통당하는 피해자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죄로 타락하여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인간처럼, 애완동물도 사람에게 항상 친근히 행동하지 않고 폭력적일 때가 있으며, 사람이 아니라 음식에 더 충성하기도 합니다. 물론 동물처럼 인간도 폭력적이기에 동물을 보호하는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사람과 엄연히 다른 피조물인 동물을 성경적으로 올바로 자리매김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사람을 동물 수준으로 낮추거나, 동물을 사람 지위로 격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동물을 학대하지 말고 잘 돌보아야 합니다.

 

가정호: 이제 ‘반려’라는 용어에 대해서 나누고 싶습니다. 과거에 비해 요즘은 반려라는 말을 잘 쓰지 않다보니 동물에게 넘어간 것 같습니다.

송영목: ‘반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들(me,tocoj, fi,loj, e[teroj, koinwno,j)은 사람에만 해당하기에 동물에게 적용하기 부적절합니다.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사용되는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에 현대 생물학의 모퉁잇돌인 진화론이 똬리를 틀고 있지는 않습니까? 언론매체들도 선호하는 표현인 ‘반려동물’에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축소하고 대등하게 두려는 진화론적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동물신학은 사람이나 동물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고, 창조주와 섭리주이신 하나님께서 중심이셔야 합니다.

가정호: 저도 개를 키우는데 딸들이 집에 오더니 “봉자야, 언니 왔어” 그러더군요. 그래서 너는 이 개의 언니가 아니고 주인이라며 가르쳐준 적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반려라는 용어는 안 쓰길 바랍니다. 좋아하는 동물, 애완동물이라고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것이 또 하나의 운동이 되길 바랍니다.

 

가정호: 끝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동물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교수님의 견해 부탁드립니다.

송영목: 그리스도인은 펫로스 증후군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혹자는 애완동물을 잃었을 때의 슬픔을 ‘권리를 빼앗긴 슬픔’(disenfranchised grief)이라 부릅니다. 사회적으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상실과 슬픔으로 간주되어 공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슬픔이기 때문입니다. 펫로스 증후군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약 22%는 애완동물을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고 응답합니다. 혼인했지만 의도적으로 자녀 낳지 않는 딩크족(DINK: Double Income, No Kids)이 애완동물만 키우는 경우 ‘딩펫(dink+pet)족’이라 불립니다. 이런 딩펫족은 애완동물 상실 증후군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기에, 증후군의 특성을 살펴서 맞춤식 처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세상 끝나도록 신실하게 반려하시는 보혜사 예수님과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보다 펫과의 교류가 더 중요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성도의 교제를 회복하여, 동물이 주는 안정감을 능가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청교도 리차드 백스터(R. Baxter)가 오래 전에 간파했듯이,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은 대부분 가족과 같은 가까운 ‘사람’을 통해 나타납니다. 물론 우울증 환자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이라는 위대한 진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비밀이 보장된 목회자의 돌봄도 받아야 하며, 약물 치료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웃의 고통에 관해서는 어떤 증후군을 느껴보았습니까? 생각해 볼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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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특집 대담] “목사님, 애완견 데리고 교회 가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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