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가버나움에 오시다
누가복음 7장 1절
어렸을 때 부르던 어린이 찬송가 중에 갈릴리를 소재로 한 찬송이 있었습니다. 가사 일부가 생각납니다. <갈릴리야 갈릴리야 너의 이름 아름답다 소리 높여 노래하자 아름다운 갈릴리> 어린 동심에 갈릴리 마을들로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이적을 행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에 신이 났었습니다.
갈릴리에는 익숙한 여러 지역이 있습니다. 나사렛, 막달라, 벳새다 등입니다. 그중에서 으뜸의 자리는 나사렛과 함께 가버나움이 다툴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곳이고,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시 직전에 이사하신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사하신 것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4장 13절에서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라고 했고, 마태복음 9장 1절은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라고 했습니다. <본 동네>라고 할 정도로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동네였습니다. 지금도 가버나움에 가면 <예수님의 도시, Tte Town of Jesus>라는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의 중심지였습니다. 로마군인이 주둔할 정도로 요충지였고(로마군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고친 기사 참조), 세관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물동량이 많았습니다.(세리 마태를 부르신 곳) 가버나움은 갈릴리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두로와 시돈으로 이어주는 요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신 이후에 그곳은 <위로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가버나움이란 <나훔의 마을>이란 뜻인데, 구약의 나훔 선지자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나훔이 위로이므로, 위로의 마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버나움의 위로는 거짓이었습니다. 경제활동을 잘 하는 사람, 세관에 근무하는 사람, 로마 군인, 성공한 일부 사람에게는 권력과 돈이 위로였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거짓 위로였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도 딸의 죽음 앞에서 울어야 했고, 백부장도 사랑하는 종의 중풍병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들의 성취도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습니다.
가버나움이 진정으로 위로의 마을이 된 것은 예수님께서 오신 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위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위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참 위로였습니다. 본래 성부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아들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위로를 가져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 가버나움에는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나병환자, 중풍병 걸린 백부장의 하인, 지붕을 뜯고 달아내려진 중풍병자, 열병으로 고생하던 베드로의 장모,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셨고,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죽은 것과 진배없던 세리 레위를 불러 제자를 삼으셨는데, 그가 바로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54~59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을 기다렸고, 환영했습니다. 누가복음 8장 40절을 보면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자마자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8장 41절입니다.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가버나움은 오늘 우리 삶의 터전을 상징합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도 예수님께서 오셔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환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가버나움에도 예수님으로 인한 이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 사회가 욕망과 좌절이 공존하는 가버나움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으로 충만한 가버나움이 되길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