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1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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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란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 시대에도 천재가 필요할까요? 역사의 주역은 천재입니까, 아니면 범상한 인물들입니까? 오랫동안 제기되었고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 아닐까 합니다. 천재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사상가들마다 달랐습니다. 대표적인 천재예찬론자라 할 수 있는 철학자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에서 쇼펜하우어를 천재라고 부르면서 “사람은 각자 내면에 ‘생산적인 유일성’ 곧 ‘그의 본질의 핵심’을 지니고 있고, 이 유일성을 의식하면 비범한 사람의 광채가 나지만 게을러서 이를 견디지 못하고 몰락하고 만다”고 했습니다. 또한 ‘선악의 저편’에서는 천재를 “생산하든지 출산하는 자”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반면 덴마크 태생으로 실존주의 효시라 불리는 키르케고르는 니체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 철학자였습니다. 자신부터 천재를 꿈꾸지 않았으며 세속적 천재보다 신앙적 인물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천재와 사도의 차이점’이란 글에서 천재는 ‘내재(immanance)의 영역’에 머무는 반면 사도는 ‘초월의 영역’(transcendence)에 속했고, 내재의 영역에서는 이성이 절대적이지만 초월의 영역에서는 신앙이 귀하다고 보았습니다. 동시에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물은 천재가 아니라 순교자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천재란 비범합니다. 재능과 기예 면에서 비범하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도 그러합니다. 특히 천재라 불리던 사람들은 보편적인 실존적 불안을 넘어서는 증상을 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이런 측면을 천재의 특성으로 꼽을 전도였겠습니까? 1514년 당대의 화가로 추앙받던 알브레히트 뒤러는 ‘멜랑콜리아 1’이라는 작품을 그렸는데, “멜랑콜리아”라는 말 자체가 불안이나 우울이란 의미이니 그런 면들을 천재의 특징으로 여겼다는 당시 풍조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우울이라는 감정이 없다면 창의적인 상상력을 가질 수 없고 모든 창조는 우울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니체의 말처럼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출산하는 일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창조적 천재들이 우울증을 앓았다는 말이 일견 그럴싸해 보이기도 합니다. 모차르트, 베토벤, 말러, 고갱과 고흐,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로빈 윌리엄스 – 이 사람들은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종 불안과 우울에 시달렸던 유명인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천재들이 시대를 선도하고 문화를 주도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인간의 역사는 얼마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 놓여 있겠습니까? 인간 문명이 불안에 기초한다면 그 자체로 얼마나 우울한 소식입니까?

 

그렇다면 왜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천재에 열광하는 걸까요? 다시 키르케고르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천재 예찬을 부추긴다. 왜냐하면 천재를 한낱 기적으로서 우리와는 아주 먼 존재라고 생각할 때만 천재가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재란 ‘자신의 사고를 한 방향으로 활용하거나 모든 것을 소재로 이용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의 내적인 삶을 진지하게 관찰하며 여기저기에서 모범과 자극이 되는 것을 찾아내어 그것들을 자기의 수단으로 짜 맞추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다.’”(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Ⅰ》 162). 천재가 우리와 다른 점은 그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열정과 관심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재는 우리가 온갖 곳에 쏟는 관심과 에너지를 자신의 일에 온전히 투자합니다. 여기서 “자신의 일”이라는 부분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실 천재라 불리는 존재들은 처음부터 인류애나 역사의 진전 같은 문제에 관심을 쏟았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이상한 ‘천재론’이 퍼져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폐허가 된 이 땅을 부강하게 만든 존재는 한 사람의 천재였습니까? 개발도상국에 불과하던 이 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요 세계 5대 문화강국이 되게 한 비결은 한 사람의 비범한 천재의 지략과 재능에서 비롯되었습니까? 이념과 체제를 수호하는 역할은 천재적인 누군가의 손에 달려 있다고 여기십니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런 존재를 만들어내고 그런 존재들에 집착합니까? 일종의 허영심과 자기애 때문이라고 한 사상가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면서부터 괴물인 자보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괴물로 만들어진 존재가 더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이 땅의 위대하고 찬란하며 아름다운 역사는 한두 사람의 비범한 천재가 아니라 수많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이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역사의 주관자를 누군가 하나의 존재로 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영광의 자리는 창조주요 심판주이신 그리스도에게 돌려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를 부정할 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은 비범한 천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자취와 행적을 좇아 살아가는 범상한 그리스도인들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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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천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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