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젊은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잘 통하지 않지만…) 정치적으로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도 너무 변해버린 생각과 가치관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식당, 은행 등 공공장소에서 3가지 ‘척’, ‘3척’을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잘난 척. 둘째, 있는 척. 셋째, 아닌 척을 잘해야 현 사회에서 대우를 받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만 해도 겸손하게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미덕이었는데… 그때는(나때라고 말하기 쉬워서) 잘 나가도 잘나지 않은 척하고, 알아도 잘 모르는 척. 있어도 있는 척을 하지 않는 것이 덕이었고 겸손의 진미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상하게도 자기과시를 하는 사회가 되어 나를 알려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자기과시욕구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영역이 종교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자신을 굉장히 도덕적이고 깨끗하며 남과 다르다고 말하고 인식시키면서 자기확증편향으로 굳어져 가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갖는 욕구이지만 특히 이러한 욕구는 교회를 다닌 지 오래된 성도에게 매우 강하게, 자주 발견됩니다.
‘무엇이 행복인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와 교회에서 경건하게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경건 욕구와 욕망, 그리고 돈, 물질에 관한 욕구, 욕망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특히 경건에는 기도가 빠질 수 없고, 물질에는 구제가 빠질 수 없습니다. 과시용 경건을 목적으로 기도를 시작하는 이가 있을까요? 과시용 경건을 목적으로 구제를 시작하는 이가 있을까요?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다 보면 습관화 되어버리고 처음의 순수한 동기가 사라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구제의 동기가 과연 하나님 사랑의 실천인지, 나도 모르는 우월의식에서 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구제의 보상으로 죄에 대한 용서를 받기 위함인지 한번 되돌아볼 여유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때에 비하여 우리는 얼마나 풍족해지고 편리하게 된 줄 모릅니다. 감사보다는 오히려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비하하며 불평과 우울 사회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마음의 첫 동기가 중요합니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독일 교회가 히틀러에게 속아 교회의 참 역할을 잃어버린 때의 이유를 값싼 은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정품 아닌 짝퉁, 참 값어치 아닌 싸구려 은혜, 회개가 없는 죄 용서입니다. 죄를 용서받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지만, 막상 그 죄에 대해서 아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축복 받기만 원하지, 헌신의 고백, 죄의 고백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과 봉사를 하려 하지 않고, 교회에 와서 그저 청소와 식당 봉사 몇 번 하고 자기 일을 다한 듯이 하거나, 일이 많아서 짜증나고 힘들다고 합니다. 왜 다른 사람들은 안하느냐고 불만과 불평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바로 값싼 은혜, 싸구려 은혜가 아닌가요?
예수님의 피는 싸구려가 아닙니다. 구약의 황소와 염소의 피가 효력이 있었으니, 신약의 예수님의 피는 얼마나 효력이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2000년이 지나도록 식지 않고 뜨겁게 흐르고 있는 지금,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복음의 값어치를 가지고 오늘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변해버린 세상이지만 변하지 않는 복음을 들고 살아내야 할 우리의 기독교 용사들. 다시 힘을 내어 달려가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