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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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교계에서는 그를 ‘황전도사’로 불러왔다. 물론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되기 전에는 그에게 친숙한 호칭은 전도사. 앞으로 목사안수를 받아 반드시 목회자가 되는 것이 그의 영적 꿈이었다고 지난 날 부산기독기관장회 멤버로 참여하여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법조계 양인평 장로가 부산 고등법원장 시절 부산기독기관장회를 창립했다. 법조계 멤버 중 김신 대법관, 그리고 황교안 국무총리, 허진호 장로(법률구조 전 이사장)를 배출할 만큼 이름 있는 많은 기독 법조인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아마, 영의 은혜를 입는 모양”이라고 어느 목사가 한마디 코멘트 했다. 초대회장 장성만 목사 재임기간에는 기독대학총장들이 대거 참여했고, 법조인 중 현직 부산가정법원 원장 최인석 장로가 회장을 맡고 있다.
황교안 전도사는 대표적인 공안통, 공안검사로 이름을 떨쳤었다. 이번 통진당 해체도 손수 헌법재판소에 직접 가서 소명자료 등 진술을 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필자는 그가 부산동부지원 제1차장 검사시절 만났었다. 그는 부산에도 기독교교도소를 만들어 기독교적 교화를 통해 범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교도소 전도에 매우 관심을 가지고 몇몇 부산지역 교회를 순방하면서 헌신예배를 통해 교계에 알리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항상 동행하는 분이 있었는데, 그의 부인 최지영 권사였다. 최 권사는 성악을 전공하여 황 전도사와 함께 듀엣으로 특송하는 등 부부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이후로 몇 번 가진 식사자리를 통해 그의 기독교적 품성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뜻하는바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야간에 수도침례신학교에서 수학하고 졸업했다. 부산고검장 시절인 2010년 부산기독기관장회가 매주 화요일, 동구 좌천동 옛 금호호텔에서 조찬성경모임을 가질 때 필자도 몇 번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는 말이 없고 인자한 학자와 같았다. 아마 옛날 같으면 성균관 대사헌에 어울리는 스타일이라고 느꼈다. 마지막 검사 생활도 부산에서 고검장으로 끝을 맺고 2011년 9월 19일부터 2013년 1월까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변호사로 활동했다.
한때 변호사 시절, 그의 저서 종교활동과 분쟁의 법률지식(시민법률상담) 등 기독교계에 관한 교회법과 사회법을 비교 연구하는데 매우 유익한 법률상식을 제공해주었다. 물론 그는 교회헌법에 관한 해설을 일반법률적 성문법 구조안에서 풀이하는 매우 까다로운 부분까지 자세히 설명하되 가급적 교회 헌법과 권징 틀 안에서 교회분쟁을 해결할 것을 권고하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변호사에서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장관이 된 것도 뜻밖이었고, 국무총리직은 꿈에도 생각 못한 자리였다고 어느 사석에서 말한 것을 보고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2005년 서울중앙지검2차장 시절에는 국정원과 안기부의 불법도청사건을 진두지휘하여 당시 불법도청을 지시하거나 묵인한 혐의로 임동원과 신건 등 국정원 전직 원장을 구속시키는 공안검사의 관록을 제시하기도 했다.
황교안 전도사는 매사에 원칙을 중시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독인다운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바울사도가 “늘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한 것처럼 교만치도, 잘난 체도 않고 겸손하면서도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와 부산 동부지검1차장 검사시절 모 구청장과 교계 J장로가 불구속 기소가 됐을 때 관할 지역이라 한번 해운대 센텀시티 오션 중국집에 만찬을 한 일이 있다. 공과사를 명확히 구분하여 제대로 말도 못 끄집어냈으나 그는 말은 안 해도 묵시적 눈치로 무엇을 주문하는지 아는 것 같았다. 
함께 우리가 다 죄인이니까 남을 저주, 미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하나님께 기도한 적이 있다. 침례교 전도사로 서울 소망기독교 교도소에도 그가 함께 일조한 것으로 안다.
한때 국무총리 후보 시절 청문회에서 야당 인사가 “부산 여자들이 거세다”고 본보 기사 내용을 들어 보이면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부산 여성들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본지의 기사를 검색해 황교안 고검장 시절에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무기로 삼았던 것이다. 한때 김신 대법관 후보도 청문회 시 본보 기사를 가지고 야당 인사들이 공격을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참여정부시절 검사장에 바로 낙방한 고비도 경험하기도 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경기고등학교와 성균관대를 나와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공안검사 길만 외로이 지켰다. 1957년생 아마도 국무총리를 하면서 애굽에 팔려간 요셉처럼 지혜롭게 국사를 잘 운영하면서 위로는 하나님을 아래로는 국민(백성)을 섬기는 기독인 향기가 나는 총리로 마무리하기를 기대한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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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교계 인물2] 황교안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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