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신학교를 다닐 때에 겪은 일이다.
지금의 나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하여 보행을 하지만, 당시(2009년)에는 지팡이를 이용하여 보행을 할 때였다. 수업을 마치고 쉬는 있는데 한 분이 교실로 오셔서 나를 보시더니 “전도사님,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해봤어요?” 라고 물으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분위기를 고려하여 “당연히 기도했죠” 라고 미소로 답한 적이 있다.
나처럼 장애로 인하여 불편함을 겪거나, 질병으로 아픈 사람치고 그 상태가 호전되거나 사라지기를 위해 기도를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나에게 질문을 던진 분처럼 말하는 분들이 실제로 교회 안에 많이 있다. 물론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는 줄은 알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심정을 한 번쯤은 헤아려 보았는지 묻고 싶다.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에는 듣는 사람에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여 어울리는 말을 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만약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한다거나,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는 건 그저 시끄럽게 울리는 소음이거나, 오히려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비수(匕首)가 될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방의 상황과 환경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속담에는 '말'과 관련된 속담들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가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이다. 이 속담은 우리가 내뱉는 말 한마디에 영향력이 큼을 내포하고 있다. 성경에도 '말'과 관련된 구절들이 많다.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잠언 12:18),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언 15:1),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골로새서 4:6). 모두 말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늘 사람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말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 말이 때로는 누군가를 살리거나 힘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때로는 그 말로 인하여 사람이 죽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말을 듣고 싶은가? 힘이 되는 말, 사랑이 담긴 말을 듣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상대방도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싶지 않을런지.
아직은 추운 겨울이지만 며칠 전에 따뜻하고 생명이 싹트는 계절인 봄으로 접어든다는 입춘(立春)이 지났다. 사람들은 외롭고 아프고 힘들다. 춥다. 그런 사람들에게 환경과 상황에 맞는 말을 함으로써 온기(溫氣)를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잠언 2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