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문학] 그리스도와 십자가, 그리고 복음의 자리로
배덕만 《한국개신교근본주의》
배덕만 《한국개신교근본주의》
윤석열 정권의 느닷없는 계엄선포와 좌절에 이은 탄핵정국으로 정국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가운데 한국기독교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교세는 줄어들고 있으며, 신뢰도마저 천주교, 불교에 이어 3번째다. 기독교인이란 말을 꺼내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교회에는 식자와 청·장년층이 사라지고 있으며, 사랑과 용서의 종교라는 기독교가 혐오와 차별, 배제의 진앙지가 되어 민심과 멀어지고 있어 화해자-peacemaker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 되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저자는 일부 한국개신교 근본주의에 그 원인이 있다고 진단하고, 미국과 한국의 근본주의의 역사와 수용과정, 그리고 새로운 유형의 작금의 상황 등을 신학, 윤리,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이 시대에 주목해야 할 광야의 소리다!
◇ 저자소개 ∥ 배 덕 만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을 졸업하고 Yale Divinity School S.T.M과 Drew University M.Phil, Ph.D에서 수학했다. 전공은 교회사이다. 현재는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위원으로 백향나무교회의 담임으로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
◇ 저서∥
《미국기독교우파의 정치운동》, 《세상을 바꾸는 도전》, 《성령을 받으라》, 《소명》, 《교회사의 숲》을 비롯하여 역서로는 《급진적 기독교》 외 다수가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한국교회, 인문학에서 답을 찾다》 / 배덕만 / 도서출판 대장간 / 2018
《신학과 사회적 상상력》 배덕만 외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 2024
《종교 중독과 기독교 파시즘》 / 박성철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20
그리스도와 십자가, 그리고 복음의 자리로
- 분열과 갈등이 아닌 통합과 상생으로 -

왜곡된 신앙이 교회의 위기 불러
“한국개신교는 그동안 보수정치권에 대한 가장 충성스러운 지원세력으로 막강한 힘을 과시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역사발전에 심각한 걸림돌이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민족적·신앙적 트라우마다.”
위기에 직면한 한국기독교
김길구 이달은 기독교교회사가 배덕만의 〈한국개신교근본주의〉입니다. 130쪽이 안 되는 소책자입니다.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최근 서부지법 사태와 관련, 미국과 한국에서 일부 교회가 어떻게 이데올로기화되고 극우화되는지를 비판적으로 다룬 책입니다.
김현호 저자는 미국개신교근본주의의 형성 과정과 한국개신교근본주의의 수용과정, 그리고 한국개신교 근본주의의 특징 등을 신학적, 윤리적, 사회적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습니다. 읽어보니 한국과 미국의 근본주의가 서로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류지원 우선 근본주의의 정의부터 하지요. 근대라는 충격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들의 옛 종교문화를 보존하려 했던 보수적 기독인들의 저항운동으로 그 운동의 지속적 노력을 검토하는 것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개신교 근본주의
김길구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한(1620) 청교도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정착하다 영국식민지에서 독립하게 되지요.(1776) 이후 이민자들의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과 동부해안지역에 머물던 영토가 서부개척시대 팽창주의 정책으로 불과 100년 만에 북미대륙을 아우르는 기적의 과정을 목도하면서 이 약속의 땅을 주신 것은 기독교와 민주주의에 기초한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으로 받아들여 세운 나라입니다.
김현호 그런 미국이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는 19C말과 20C초 급격한 사회·문화 변화와 현대과학, 특히 진화론 및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보수적 개신교 운동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어요. 그동안 보수적 백인기독교인들이 추진해온 ‘기독교적 미국’Christian America 의 가치가 흔들리고, 세계신학계를 주도하던 독일의 성서비평학과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면서 성서비평학과 생물학적 진화론이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위협하게 됩니다.
류지원 이때 프린스턴 신학교는 스코틀랜드의 상식철학에 근거한 성서무오설을 교리로 완성하고, 영국에서 건너온 존 달비는 세계적 부흥사 무디를 설득하여 성경공부와 부흥운동을 통하여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설파하여 미국 복음주의 내에 급속히 퍼지면서 성서무오설, 묵시적 종말론을 대중화할 수 있는 연합전선을 구축하게 됩니다.
김길구 1883년부터 캐나다에서 개최된 ‘나이아가라 성서예언대회’와 1910년부터 발행된 학술잡지 「근본적인 것들」The Fundalmentals 같은 출판물을 통해 근본주의 신학이 체계화 되었고, 이를 ‘무디성서학원’을 비롯하여 많은 신학교육기관이 이를 채택함으로써 1910년 미국북장로교회는 총회에서 근본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커집니다.
기독교우파의 출연
류지원 칼 매킨타이어, 밥 존슨 1세가 주도한 근본주의 그룹은 종전의 보수적인 신앙에 반공주의와 백인우월주의를 결합하여 더욱 전투적인 색체를 띄며 세상에 저항하고, 1970년대부터 다시 미국 기독교의 무대 중앙으로 복귀하기 시작하였는데 베트남 전쟁과 흑인민권운동으로 들끓었던 격동의 60년대에도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근본주의자들이 1973년 낙태를 허용한 대법원 판결이후 소위 기독교우파란 이름 아래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김현호 이 예기치 못한 흐름을 주도했던 인물은 제리폴웰과 팻 로버트슨이다. 포웰은 ‘도덕적 다수’란 정치로비단체를 만들어 1980년 미국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을 백악관 주인으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지요.
김길구 팻 로버트슨은 세계최대의 기독교방송국 CBN과 기독교우파의 대표적 정치단체인 기독교연합의 설립자로 1988년 대선에 직접 출마하기도 했으며, 조지부시 2세의 대통령 당선과 함께 근본주의는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확고한 입지를 가지게 됩니다.
한국개신교 근본주의
류지원 아펜젤러, 언더우드 같은 선교사들은 19C말 미국교회의 ‘종교대각성운동’과 연관된 ‘학생자원운동’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무디의 ‘전천년주의 재림운동’과 그가 이끈 국외선교운동의 영향으로 성경중심적 보수주의 신앙과 근본주의적 신앙을 한국에 이식하게 됩니다.
김현호 신학교육 역시 프린스턴신학교를 비롯한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 계통의 교수들과 유학생들에 의하여 전수되어 미국에 의존하게 되었고, 한국 목회자들에게 고등교육을 거부했던 네비우스 정책으로 성서원어나 현대적 의미의 성서신학 같은 교육을 받지 못해 신학적 토대가 빈약했어요.
김길구 1930년대에는 미국 기독교의 신앙교리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번역, 적용하는 과정을 통하여 복음주의가 내재화 되었고, 1934년에 일어난 ‘여권문제사건’과 ‘창세게 모세저작 부인사건’, 그리고 ‘어빙돈 성경주석 사건’ 등을 거치면서 신학의 진보적 경향을 교단적 차원에서 강력히 억제함으로써 근본주의가 더욱 고착됩니다.
한국전쟁과 근본주의
김현호 1920년대부터 한국개신교는 공산주의와 갈등관계에 있다가 해방후 북한이 공산화되면서 유물론적 사고와 반종교적 철학, 북한 지주들의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으로 대다수 기독교인과 극단적으로 대립하게 됩니다.
류지원 여기에 해방전 한국개신교 인구의 7~80%를 차지하던 서북(평안도와 황해도) 출신들이 대거 남하한 가운데 터진 한국전쟁은 기독교가 반공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전투적이고 맹목적인 신앙적·신학적 색체를 띄게 됩니다.
김길구 한국전쟁부터 1980년까지 한국개신교는 군부독재 치하의 정교유착, WCC를 축으로 한 교단분열, 민중신학을 중심으로 한 진보신학의 출현, 종교다원주의 논쟁, 오순절운동 및 부흥운동 확산 등을 거치면서 근본주의적 특성을 강화합니다.
김길구 그동안 보수든 진보든 반공에는 이견이 없었는데 교계는 북한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변화를 보인 1988년 KNCC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교회 선언」으로 분열하게 됩니다. 이 선언이 있고 난 다음 해에 보수층이 결집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결성되고 한국 정치판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됩니다.
근본주의와 극우의 출현
김현호 이후 한기총은 국내외 정치의 민감한 사안, 대선과 사학법개정 등에 적극적으로 반대의 견해를 표명하고 시위를 주도함으로써 보수교회의 정치활동을 주도하고,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 2004년, 2008년에 총선에 참여하였으나 의회진출에는 실패합니다.
류지원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단체인 뉴라이트운동, 서경석 목사를 주축으로 ‘기독교사회책임’이 출범함으로써. 기독교적 뉴라이트 그룹이 형성됩니다. 한국개신교는 당시의 노무현 정권을 친북, 친공, 반미, 좌파세력으로 규정하고 2007년 대선에서 장로 이명박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여 한국정치의 중심부로 진입합니다.
김현호 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개신교 교인 중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70~80%, 광화문태극기부대 같은 정치적 극단주의자가 10% 안팎으로 수에 비해 과대평가 되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폭력과 혐오, 배제, 차별이 아닌 화해자의 모습으로 복음의 순수성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김길구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한국교회는 선긋기를 통한 특정이념의 맹목적인 지지세력이란 정치적 욕망의 덫에서 빠져나와 한국사회의 비판적 예언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정리 김길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