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1-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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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나라 안팎은 혼돈 그 자체다. 무안공항 사고로 올해는 새해맞이 행사도 대부분 취소되고 179명의 귀한 생명의 사망뉴스 보도를 통해 새해벽두부터 아프고 슬픈 소식에 마음이 우울하다. 그렇게 2025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핵폭탄이 헌법재판소에서 언제 어떻게 터질 것인가에 온 국민은 좌불안석인데 광화문과 여의도에서는 밤낮없이 찬반 시위로 홍역을 앓고 있다. 국태민안의 보루가 되어야 할 여의도 1번지는 어느 하루도 삼류정치의 쌈박질하지 않는 날이 없다. 아프다.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이 늙어가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희망의 줄을 놓지 않고 쉬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나라 이 민족을 지켜주시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2025년도 그렇게 하루하루 열리고 닫힌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도 말씀 사역자로 농어촌 산골 개척교회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송구영신 예배로 시작한 2025년 새해 첫날은 감림산기도원에서 신년 축복 성회로 시작되었다. 대성전을 가득 메운 성도들을 보면서 울컥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새해 첫날에 기도원에 올라와 기도하는 성도들의 젖은 눈을 보면서 내 마음이 젖었다. 성도들의 목이 터지라고 부르짖는 기도 소리에 거룩한 소름이 돋았다. 설교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것임을 알기에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마음을 그림처럼 그려 보여 주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2025년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하신다고 선포했다.

 

젊은 청년이 조용히 다가와 “목사님 저 한 번만 안아 주시면 안돼요?” 한다. 23세의 손자 같은 청년이다. 조용히 내 품에 안아주니 품에 안겨 헉헉거리면서 울었다. 그러면서 한마디 한다. “목사님 대한민국이 아파요.” 순간 천둥소리를 듣는 느낌이었다. 귀도 마음도 가슴도 먹먹했다. 그 언젠가 TV 연속극에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할말을 잃은 나는 “그래, 기도하자.”라는 한마디 밖에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니 지금도 내 영혼은 그 청년의 젖은 목소리에 아픔이 가시지 않는다.

 

몇 년 전 시골교회 목사님이 부흥회 강사 초청을 하셨다. 일정이 나오지 않아 정중하게 거절했더니 전화로 내게 들려주는 한마디에 내 마음은 얼어붙은 느낌이었다. “우리 교회 78세 할머니가 서목사님 방송 설교를 듣고 제게 찾아와 ‘죽기 전에 그분 설교를 직접 한번 듣고 천국 갔으면 원이 없겠다’라고 하셨습니다. 한 시간도 좋으니 허락해 주시면 안 됩니까?” 이리저리 일정 조정하여 주일 1일 집회를 약속하고 갔다.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13명이 예배를 드렸다. 강사를 바라보는 대부분의 연로하신 성도님들의 눈은 주님을 바라보는 혈루증 여인을 느끼게 했다. 많이 울었다. 그 1일 집회만큼 은혜와 감동을 마음에 담은 집회는 없다고 지금도 고백한다.

 

오래전 일이지만 점심을 먹으면서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국을 더 먹겠다고 하였더니 아내는 국자에 국을 떠 국그릇에 보충해 주었다. 그런데 국자는 신혼 시절에 샀던 것으로 손잡이가 휘어져 있는 것이었고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닳아 있었다. “여보, 인제 그만 사용하고 새것으로 바꾸지.”라는 무심코 하는 말에 아내는 “아직은 더 쓸 수 있잖아요.”라는 대답을 했다. 그 순간 뭔지 모를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고 손잡이가 휘어진 국자를 통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사용하는 것은 비단 국자뿐이 아니다. 성도님들이 선물로 주신 좋은 것들도 많지만 목사관에는 신구 문화가 공존되어 있는 살림살이들이다. 버리자니 사연도 있거니와 아깝고, 사용하자니 불편한 것들이 어디 국자 하나뿐이겠는가? 손잡이가 부러진 국자를 보면서 인생도 목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계륵’(鷄肋)의 교훈과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깨우침을 다시금 생각했다.

 

‘鷄肋’이란 말은 쓸모는 별로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사물의 비유로 사용되는 용어로서 진서(晉書) 유령전(劉伶傳)과 후한서(後漢書) 양수전(楊修傳)에 나오는 말이다. 진(晉)나라 초기에 죽림칠현 가운데 ‘유령’(劉伶)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유령이 술에 만취가 되어 행인과 말다툼을 벌였다. 상대가 주먹을 치켜들고 달려들자, 유령이 점잖게 한마디 건넸다. “보시다시피 계륵(鷄肋, 닭갈비란 뜻)처럼 빈약한 몸이라 그대의 주먹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소.” 그러자 상대방이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에서 계륵이 상용되었다.

 

他山之石이란 다른 산의 거친 쓸모없는 돌이라도 옥(玉)을 가는 데에 소용이 된다는 뜻으로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서 이 말은 쓸모없는 것이라도 쓰기에 따라 유용한 것이 될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돌(石)을 소인에 비유하고 옥(玉)을 군자에 비유할 때 군자도 소인에 의하여 수양과 학덕(學德)을 쌓아 나갈 수 있음을 이를 때 타산지석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인생을 살면서 강자에게 굽실거리고 약자에게 군림하는 졸부의 삶을 엮어 갈 것이 아니라 작은 것, 쓸모없어 보이는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지닐 때 그 삶을 더욱 넓고 깊고 고고(高高)해지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부러진 국자 같은 상황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이를 소중히 사용할 수 있는 넉넉함이 우리의 삶에 있을 때 그 삶은 더욱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다.


내 나이 팔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은퇴 이후에도 한해 60여 교회 초청을 받아 말씀 사역을 한다. 불편한 잠자리와 음식, 교통수단 어느 것 하나 여의찮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고 방지일 목사님이 101세의 고령에 포항중앙교회 주일설교를 인도하신 후 안수기도 해 주실 때 “서목사님은 녹슬어 못 쓰는 목사가 아니고 닳아서 못 쓰는 목사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의 응답이 오늘 나의 삶이 되고 있다. 부러지고 닳아버린 국자 같은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오늘도 하나님이 나를 향해 “아직은 사용할 수 있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감사함으로 다음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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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아직도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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