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땅을 샀습니다. 한 평에 150만원을 주고 사서 조그마한 공장을 짓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 너무 기대하고 신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땅이 한 평에 100만원도 안 하는 땅인데 나는 150만원이나 주고 땅을 샀던 것입니다. 옆집에서 저에게 하는 말이 “아이고 도시 양반. 속아서 땅을 샀구먼?” 그때 저는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작은 회사이지만 이 땅이 저희 회사에 정말 필요한 땅이었습니다. 정말 저는 잘 샀다고 생각하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땅을 살 때 사용가치로 보았지, 교환가치로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땅에서 회사의 일이 너무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와 글을 읽는 여러분은 교환가치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에서 이 땅을 교환가치로만 볼 때는 비싼 땅이지만, 저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필요한 땅, 사용하기에 너무 좋은 땅인 것이죠. 아니, 한 평에 200만원을 달라고 해도 저였다면 오케이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환가치로 나의 인생을 보면 나이가 들었을 때 ‘열심히 살았는데 집 한 채밖에, 아니 집 한 채도 없는 인생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남는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무릎뼈가 닳고 허리가 아플 지경까지 열심히 살아온 나의 인생은 과연 몇 점일까?’하고 허무함을 느끼며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용가치로 인생을 볼 때는 ‘얼마나 멋지고 최선을 다한 인생인가? 얼마나 열심히 사용했으면 더 쓰이지 못할 만큼 사용한, 멋진 노인의 인생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우리 아버님 어머님들을, 교회 어르신들을 나는 어떤 가치관으로, 어떻게 보고 있는가요?
저희 교회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근면성이 얼마나 사용가치 있는가?’, 지금도 창조적인 생각으로 ‘놀면 뭐하나’, ‘쉬엄쉬엄 일할 수 있는 것,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가’, ‘일거리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가’, ‘나 같은 사람을 사용해주니 고맙지’. 이와 같은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반면 저희 교회 청년들에게 듣는 말이 있습니다. ‘내 값어치가 한 달 200만원 밖에 안되나요?’,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250만원이라니? 회사 다닐 맛이 안 나요’. 젊은이들에게는 이 부분에서 갈등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교환가치의 관점으로만 인생을 볼 때, 얼마나 비참한 인생이 되는지요. 나의 갈등은 인생을 사용가치로 볼 때 나오는가요? 교환가치로 볼 때 나오는가요? 여기에는 객관적인 생각과 주관적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가치관도 객관적 가치관, 주관적 가치관이 있습니다. 꼭 가치 평가를 일반적인 평가로, 일반적인 잣대로,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요?
몇 년 전에 기억에 남는 폐업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예배를 드려달라고 요청을 하신 장로님, 권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목사님, 이제까지 많은 개업 예배를 드려 오셨지만 폐업 예배를 드리러 오신 적은 없으시죠? 저희가 35년간 세탁업을 했는데 이제 힘도 없고 해서 폐업을 하고자 합니다. 오셔서 예배 인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가고 말고요.”라고 답하고 기쁨으로 달려갔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에 바깥에 손님이 옷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잠깐 인사를 주고받으시는데, “이제 폐업하신다면서요?” “네. 그동안 저희 가게를 이용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네. 이제 저희들이 불편해서 어떡하죠?”라며 대화를 나누는 정다운 소리를 들었습니다.
‘정말 이 노부부는 건강하게, 재미있게 사용가치를 잘 사용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저 기억이 제게 오랫동안 남아있습니다. 우리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가치관 때문에 불행합니까? 아니면 사용가치 때문에 행복합니까? 누구나 하나님이 부르시면 “네” 하고 가야 합니다. 그때까지 사용가치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 아닐까요?
늦게 선교에 눈을 떴다며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선교에 열정을 쏟고 계신 집사님, 맡은 교회 식당 봉사를 그 연약한 중에도 웃으면서 감당하시는 권사님, 말없이 뒤에서 기도하면서 격려해주시는 여전도회 집사님. 너무 고맙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2025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올 한 해는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로 시작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의 자녀에게 너무 고맙고, 나의 가족에게 너무 사랑하고, 우리 교인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절 지금까지 사용가치로 봐주시고 사용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