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어수선합니다. 마음 아픈 소리만 난무합니다. 잘못했다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네가 잘못했다는 사람들로만 가득합니다. 사방에서 살기가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만 들려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2천 년 전, 유대 땅도 그랬습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었습니다. 신음 소리만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절망이 깊어진 만큼 메시아에 대한 간절함도 점점 커 갔습니다.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절박할 때, 예언은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주께서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시는 놀라운 사건, 임마누엘이 이루어졌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죄와 사망과 절망에서 구원하실 분이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을 길이 열렸습니다. 사도행전 2장 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 이름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그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임마누엘’이 가능해졌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정도로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자신을 연약한 사람의 몸에 가두는 가장 위험한 모험을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고 싶어 그렇게 하셨습니다. 임마누엘로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사야 41장 10절의 약속,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약속이 성취입니다.
그분의 탄생을 겸손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습니다(빌립보서 2장 6-7절). 그로 인하여 우리는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부요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린도후서 8장 9절)
그렇습니다. 성탄은 주님이 오심으로 우리가 부요케 되는 날입니다. 성탄절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천국은 나를 비우고, 나를 낮춤으로 이루어집니다. 나의 겸손을 다른 사람의 부요함이 됩니다. 사는 것이 참 힘듭니다. 자신을 비우지 못하고 온갖 쓸모없는 것들로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체를 비우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처럼, 내 것을 비워 다른 이의 삶을 채워주어야 합니다.
성탄의 의미를 내 삶으로 살아냅시다. 죽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소망을 주어 어두움을 성탄의 불빛으로 이겨내는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