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성탄절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마굿간의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과 그 곁에서 사랑스럽게 예수님을 바라보는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그들 곁에 선 목자들과 여러 동물들, 그리고 각자 황금과 유향, 몰약 등의 예물을 들고 경건하게 서 있는 세 명의 동방박사들입니다. 요즘은 교회나 성당, 또는 호텔 로비에 이런 조형물을 만들어 놓은 곳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올 겨울에 개봉해서 많은 성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영화 <저니 투 베들레헴>의 하이라이트 장면도 바로 이 장면이었습니다. 영화 속 가상의 인물인 헤롯왕의 아들 안티파테르가 성탄절의 밤에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마리아, 요셉, 동방박사들과 마주치는 이 장면은 관객들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던 이 영화의 백미였습니다.
그런데 2천 년 전 베들레헴의 마굿간의 모습을 후대에 누가 재현해서 성탄을 기리게 되었는지, 그래서 우리가 성탄절이 되면 이 형상을 만들고 이를 통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돌아보고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는지 아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 분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1992년 ‘타임’지는 지난 천 년간 가장 중요한 10대 인물을 선정하면서 종교인으로서는 종교개혁을 주도한 독일의 마틴 루터와 함께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코를 선정했습니다. 같이 선정된 발명가 구텐베르크나 탐험가 콜롬버스, 과학자 갈릴레오 갈레이나 화가이자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에 비해서 대중적인 지명도가 크지 않았던 그가 이름을 올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의 삶 그 자체가 복음서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한 모범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삶의 모델로 삼아 기쁨으로 그분을 본받아 살았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도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끄는 삶을 권했습니다.
프란체스코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성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하나 되시기 위해 아기로 태어나신 성육신 사건에 감동받아 그는 성탄절을 특별히 엄숙하게 기념했습니다. 1223년 그레치오 마을에서는 베들레헴의 첫 크리스마스를 재현해 마구간, 짚, 소와 나귀를 마련하고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탄의 의미를 나눴습니다. 그는 성육신의 겸손을 따라 자신의 삶에서도 철저한 가난을 실천하며, 가난 속에서 오히려 기쁨과 힘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2022년과 2023년에 아시시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예수님의 마굿간 형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고, 그래서 우리 교회의 다음세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흰색 도자기로 제작된 마굿간 형상 세트를 직접 구입해서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가난을 단순한 물질적 결핍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마음의 자세로 이해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억울한 일을 겪어도 인내하며, 자신에게 닥친 고통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심한 병고를 겪으면서도 그는 “주님, 이 모든 고통에 감사드립니다. 원하신다면 더 많은 고통을 허락하셔도 좋습니다.”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복했습니다.
프란체스코가 마구간의 크리스마스를 재현한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새롭게 일깨웠습니다. 이후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구유와 아기 예수상을 집과 교회에 두는 관습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처럼 성탄절이 되면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으로 내려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마굿간의 아기 예수를 떠올리며, 그 가난한 왕을 따라 사는 거룩하고 소박한 삶의 열망을 점검해야 합니다.
프란체스코는 단순히 말로 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실천하며 복음서의 삶을 살아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2024년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에게도 오늘날 우리의 사회적 혼돈과 변혁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발걸음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교회는 마땅히 우리의 다음세대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구원하시는 능력과 세상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공의에 대해서 알려주고 따라가도록 지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다음세대가 이 시대를 살리는 오늘날의 작은 예수로 설게 될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