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초 강원도 오색그린야드에서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 반까지 단 한 시간도 안 빠지고 교역자 워크숍에 참여를 했습니다. 그냥 참여만 한 것이 아니고, 모든 강의를 하고 거기에 대한 반응을 보며 워크숍을 인도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평소 존경하는 목사님 몇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은 부부 간에 한 주간 동안 쉬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중 한 분의 목사님이 “역시 소 목사님은 젊고 은혜가 충만하시네요. 오늘 하루로 끝납니까?” “아닙니다. 2박 3일 동안 계속합니다.” “예, 그러시군요.”
다음 날 커피숍에서 거기 오신 모든 분들이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는 응당 가서 인사를 드렸지요. 그중에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 쉬엄쉬엄하세요. 우리가 시간이 남아서 놀러 온 것이 아닙니다. 휴식을 하고 재충전을 하러 온 것입니다. 소 목사님 그러다가 반드시 탈진이 오거나 쓰러집니다.” “예, 그 말씀 유념하겠습니다.”
저는 또 수련회 현장으로 올라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식사 후에 또 그분들과 마주했습니다. 오색그린야드라는 공간이 입구는 하나고 좁지 않습니까? “목사님, 우리하고 식사는 함께 못하더라도 차라도 한 잔 마십시다. 우리는 내일 OO호실에서 보이차를 마십니다. 9시 반까지만 오시면 됩니다. 목사님이 한 시간 빠진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저는 사실 저녁 타임 끝나고 시원한 주전골도 한번 못 걸어봤거든요. 점심 먹고 1km 남짓 걷다 오는 게 전부였습니다. 사실 저녁 타임 끝나고 얼마든지 걸을 수 있습니다. 최소한 용소폭포까지는 걷다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여라도 제 마음이 해이해지고 나태할까 봐 걷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오로지 체인 리액션을 생각하다가 어떻게든지 다음 날을 위해 빨리 잠자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몸이 피곤하고 어깨가 수천 킬로, 수만 킬로처럼 짓눌려도, 이것은 담임목사만이 누리는 특권이자 고통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결국 그 차담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였고, 지금도 그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신혼부부들을 위한 ‘피어라 봄’을 진행하였고, 장년여름수련회를 인도했습니다. 여름수련회가 끝나자 저는 탈진이 왔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다행히 재빠르게 이재훈 의료목사님(다건연세내과 원장)이 링거를 놔주셨고, 김용선 장로님(성빈한의원 원장)이 보약을 지어 주셔서, 그나마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피곤을 느낄 때마다 자꾸만 그분들 말씀이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당시로써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생각도 옳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의 말씀이 격언처럼 들렸지만, 저의 행동도 절대로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그런 기회가 다시 온다 해도, 저는 저의 생각대로 밀어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한국교회 큰 지도자이신 목사님께서 저에게 해주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나나 소 목사는 솔직히 서자 출신 아닌가? 서자가 받은 은혜와 적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받은 은혜는 결이 다르지 않는가. 소 목사나 나나 비록 서자 출신이지만 맨손으로 개척을 해서 교회 부흥을 이룬 사람은 적자하고 결이 다르지 않는가. 우리가 할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이네. 나도 목회를 하면서 단 한 해도 안식년을 가져본 적이 없네. 서자에게 무슨 안식이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께 울먹이며 죽도록 충성만 할 뿐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