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1(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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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은 남에게 자신을 나타내는 과정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악수하고 인사하면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 과정에 도움이 되는 것이 명함입니다. 가능한 대로 명함에 많은 것을 적어 자신을 나타냅니다. 명함이 없는 저는 종종 명함을 원하는 이를 만나면 죄송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명함을 건네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단순히 말하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마음도 섞이기 쉽습니다. 그런데 성도에게 이런 마음은 옳은 것일까요?

 

모세는 나타낼 만한 것이 많았습니다. 애굽의 궁궐에서 사십 년을 보냈으니, 자신을 소개할 만한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학벌도 최고였을 것입니다. 여러 기관에서 일도 했을 것입니다. 군대 경력도 뛰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왔을 때, 그는 이런 내용을 백성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고만 말했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강에서 건져져서 공주의 아들이 된 신비롭기까지 한 일, 애굽 궁궐에서의 일을 말했다면 훨씬 더 백성들은 그를 신뢰하고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말만 했습니다.

 

백성을 인도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모세와 함께하신다는 것만 나타내셨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난하면서 갈등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들보다 뛰어나다고 하시면서, 그 이유는 애굽 궁궐에서 배운 것 때문이라는 말씀 따위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친구처럼 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즉 모세가 특별한 것은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특별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모세로 보였던 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이 광채가 났는데, 그 광채를 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한 이유는 그 광채가 하나님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나타내려 합니다. 모세가 숨긴 것을 우리는 드러내려 합니다. 가문, 학벌, 재산, 지식, 경력, 지위 등으로 우리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나타내야 할 것은 그게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생명을 나타내길 원했습니다. 자신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예수님의 생명을 보길 소원했습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늘 예수님의 죽음을 짊어졌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바울도 기꺼이 죽음의 고난을 받아들이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11절에 다음 말씀이 있습니다.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믿음으로 살게 하는 복음의 직분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빛이 모세의 얼굴에 배어들고, 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가진 모세의 얼굴에도 광채가 났다면, 어찌 복음을 가진 성도의 얼굴에 빛이 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7~8절입니다.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성도의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하나님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나타내고, 그 생명을 나타내고, 이를 통해 세상을 이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새 우리는 자기도취에 빠진 인본주의자가 되곤 합니다. 이제 우리의 추한 모습을 감추고, 주님의 광채만 나타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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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무엇을 나타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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