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1-23(목)
 


서한석 목사.jpg

저는 등산을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제 아내와 함께 등산을 했습니다. 푸르른 신록의 숲을 바라보며, 맑은 공기를 들이키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제 아내가 천국이 이것보다 더 좋을까?”라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나무가 있는데, 우리는 살아서도 천국, 죽어서도 천국, 영원한 천국을 살고 있으니, 지금 이것도 천국을 누리는 것이고, 죽어서는 더 좋은 천국을 누리겠지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천국 같았던 기쁨도 몇 시간이 지나자 육체의 상황에 따라 변했습니다. 하산길에 아내의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무릎이 아프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아내는 지옥이 이것보다 더 괴로울까?”라고 말을 하며 한 걸음씩 발을 내디딜 때마다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그런 아내가 안쓰러웠지만, 함께 보폭을 맞추며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도와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냥 동행했습니다. 나의 무릎이 아프지 않다고 아픈 아내를 뒤로 내버려 두고 빨리 내려오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무릎이 아파서 고생하는 사람이 제 아내이고, 제 아들과 딸의 엄마이고 우리는 가족이니까요. 하지만 가족이 아닌 무심한 등산객들은 저와 제 아내를 추월하여 앞서서 내려갔습니다. 그분들을 비난하거나 원망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분들도 빨리 내려가서 해야 할 일이 있을 테니까요.

 

육체의 상태에 따라서 똑같은 환경이지만 천국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육체의 장애 때문에 평생을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평생을 지옥처럼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분들의 아픔을 똑같이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함께 안타까워하며 동행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형제요 자매요 가족이니까요. 뇌출혈로 편마비 상태가 된 휠체어를 타고 있는 어르신의 가족이 여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70대 노부부가 휠체어를 밀면서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노부부만 왔으면 너무 힘들어서 여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가족은 사위와 딸이 함께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힘이 센 젊은 사위가 장인어른을 도우며 함께 여행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가족은 천국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동감하고 함께 아파하며 동행하는 삶이 천국을 누리는 삶이 아닐까요?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의 아픔을 아파하며 함께 울기도 하시고, 우리의 지옥 같은 삶이 천국 같은 삶이 될 수 있도록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천국을 누리는 삶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위드애] 천국과 지옥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