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0(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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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이사야 55:10-11)


위필드가 말하는 “복음주의”는 본질적으로 독일의 루터파가 개신교 종교개혁 시기에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의미한 바, 즉 복음 위에 세워진 교회,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운동을 통한 구원의 좋은 소식을 뜻한다. 위필드는 복음은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일을 선포할 경우에만 좋은 소식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복음은 은혜의 교리와 운명을 같이 한다. 

 

은혜교리라는 말은 16세기 말에 네덜란드에서 발전한 신학에 대한 반응으로 신학자 야코뷔스 아르미니우스(1560-1609)와 관련이 있었다. 아르미니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자유로우며 그 결과 자기 결정적인 인간의 의지를 강조했고, 이 교리 특별히 예수님이 오직 택함 받은 이들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들을 위해서만 죽으셨다는 가르침을 부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신학적 일탈에 대응하기 위해 도르트총회(1618-1619)가 소집되었고 거기서 오늘날 튤립(TULIP) 또는 칼빈주의 5대 강령으로 알려진 다섯가지 은혜의 교리에 대한 고전적 요약이 담긴 도르트 총회 신경이 나왔다. 

 

튤립(TULIP)이란 일종의 약어로 이 단어의 각 철자는 가장 논쟁거리가 된 교리들, 즉 전적부패(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saints)을 뜻한다. 

 

이 교리들은 인간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될 수 있는 어떤 영적인 선에서도 확신을 두게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 교리들은 칼빈주의의 가장 순수한 표현을 이루지만 칼빈이 이 교리들을 고안해 낸 것도 아니고 이 교리들이 종교개혁 시기에 그의 사상만의 특징도 아니다. 이 교리들은 칼빈주의의 가장 순수한 표현을 이루지만 칼빈이 이 교리들을 고안해 낸 것도 아니고 이 교리들이 종교개혁 시기에 그의 사상만의 특징도 아니다. 인본주의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달시킬 수 있는 자아실현적 존재이다. 

 

이러한 전제를 기반으로 한 인간의 삶은 자신이 자기애의 대상이 되며, 자기애는 행복한 삶의 동기가 된다. 그 결과 불완전한 자아의 완성에 대한 열망으로 인하여 치열한 경쟁으로 자신을 몰아가며, 극도의 이기적 합리주의 속에서 불가피하게 스스로 자유선택과 자유의지를 파괴해 가는 자기모순적 관념에 빠지게 된다. 성경적 관점에서 자아는 인본주의와 정반대의 개념을 갖는다. 인간의 자아는 절대적인 개혁(reformation)이 필요한 대상이며, 삶의 요체는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의 삶이다. 마 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기적 인간은 불변의 진리와 대면하는 순간 그 진리와 더불어 이타적 존재로 거듭나며, 참된 진리를 추구할 때 비로소 영혼과 삶의 조화를 경험하게 된다. 위와 같이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는 근본적으로 통합될 수 없는 개념이다. 인간은 말씀에서 멀어지면서부터 자신의 본성에 따라 움직이게 되며 삶의 목적은 욕구에 의해 동기화된다. 자신을 향한 인간본성의 방향을 절대불변의 진리로 향하게 하는 것은 초대교회, 속 사도시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로 이어지는 교회의 소명이었다. 그리고 참다운 신앙공동체의 모습은 오직 말씀으로 전인격적인 성장과 변화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롬 12:1-2, 엡 4:13, 신 6:4-9) 신앙 교육이 온전하게 행하여진 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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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문 목사] 개혁주의 교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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