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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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에서 일생을 헌신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öger), 한국명 고지선)와 마가렛 피사렉(Margaritha Pissarek, 한국명 백수선)의 아름다운 생애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4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가련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봉사했다. 마리안느 스퇴거는 1934년 4월 24일, 2남 5녀 중 셋째로 오스트리아 마트라이에서 출생했고, 마가렛 피사렉은 1935년 6월 9일, 2남 2녀 중 셋째로 폴란드 출생했는데, 1945년 부모를 따라 오스트리아로 이주하였다. 마가렛은 1950년부터 의사인 아버지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간호 견습생으로 일하게 되는데 이때 마리안느와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간호 견습생으로 만난 이들은 간호사로 남을 섬기는 삶을 다짐하고 1952년에는 인스부르크 간호학교에 입학했다. 수학 기간인 1954년에는 가톨릭 평신도 재속회 ‘그리스도왕 시녀회’에서 종신서원을 했다. ‘재속회’(在俗會)는 고유한 의미의 수도회는 아니지만, 사제나 평신도로서 속세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회헌에 따라 일상적인 조건에서 생활하는 수도 공동체를 말한다. ‘종신서원’(終身誓願)이란 일단 한 번 서원하면 그 효력이 일생 동안 미치는 서원을 의미하는데, 일생 동안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가톨릭 의식에 따라 종신서원을 한 마리안느는 광주대교구장 헨리(Harold Henry) 대주교의 초청으로 1962년 2월 24일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28세 때였다. 첫 임무는 소록도 영아원에서 0~3세 사이 영아들을 보살피는 보모 역할이었다. 반면 마가렛은 프랑스 한센인 정착촌에서 6개월 봉사하고 1959년 12월 경북 왜관 한센인 정착촌에서, 그리고 1961년에는 한센인 병원인 동해원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1966년에는 이 두 간호사가 한센병 전문 구호단체인 다미안 재단의 지원으로 인도에서 6개월 간 한센병 간호교육을 받았다. 그해 10월부터는 다시 소록도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한세인들을 보살피고 치료하는 일을 하게 된다. 이 두 이국 여성들은 환자들을 맨손으로 치료하고 같이 음식을 먹고, 환자들의 상처를 맨손으로 만졌고, 자신의 무릎 위에 환부(팔, 다리)를 올려두고 치료했다고 한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진정한 사랑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보살폈다. 이들은 상한 몸만 치료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치료해주는 고결한 인간애를 보여주었다.

 

다미안 재단은 5년의 계약기간 후 철수하였으나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남아 2005년까지 변함없이 봉사했다. 이렇게 볼 때 이 두 사람은 1950년 이후 일생동안 함께 지내며 소록도의 가련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한결같은 마음으로 헌신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소록도에서의 자기희생적인 봉사로 1994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을 수상했고, 1996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호암재단이 수여하는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이름 없이 섬기고 봉사하고자 했으나 이들의 헌신이 알려지게 되자 이런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43년간 헌신했던 이 두 간호사는 2005년 11월 22일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조용히 한국을 떠났다. 마리안느가 71세, 마가렛이 70세 때였다. 자신이 늙어 다른 이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 한국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한국으로 올 때 들고 왔던 가방 하나만 들고 평생을 몸담아왔던 소록도를 떠난 것이다. 이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결코 자기를 드러내거나 그것을 희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뿐, 남에게 알려지는 것도 원치 않았다. 소록도를 방문하기도 했고, 이들의 활동을 듣고 있던 나는 1997년 말 마리안느에게 편지를 보내 이들의 활동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개신교의 손양원 목사 이상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봉사한 이들의 사적을 정리하고 싶었기때문이다. 약 2주일이 지난 후 마리안느 스퇴거는 1998년 1월 12일자로 나에게 이렇게 회신했다. 그것도 예쁜 한글로. “주님의 평화.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 것 같아 감사하는 마음 전하며 복된 새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뜻은 잘 알겠습니다마는 저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살고 싶기에 선생님의 부탁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하느님의 사랑만이 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도록 힘써 주시고 함께 기도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갑시다. 감사합니다. 1998. 1, 12. 마리안느.”


하나님의 사랑만이 드러나도록 무명의 의지로 살았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의 고결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아낌없는 봉사를 잊지 않고 2016년 이들에게 명예국민증을 수여했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지내던 중 마가렛 피사렉은 오랜 투병을 끝내고 2023년 9월 29일 선종했고, 마리안느는 생애 마지막 부분을 살고 있다. 주님의 평화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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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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