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사순절은 2월 14일에 시작하여 3월 31일이 주일이자 부활절이다.
40일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일, 고난의 행군이고 사순절을 보내고 종려주일이 끝난 바로 하루 3월 마지막 주일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무덤에서 다시 살아남을 기념하는 날이다.
10년이 4번씩이나 거듭해 오던 목회 48년이란 한국교회 그리 흔치 않는 긴 세월 동안 한 교회에서만 목회하는 것이 보기드문 역사의 현장에서 윤성진 목사(부산영락교회 담임)를 우연히 만났다.
3월 14일 오전 윤성진 목사를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니까 필자 역시 교계 신문에 몸담고 있은지 근 50년 전 젊은 윤 전도사를 만난 인연이 이어져 오늘까지 지켜왔다. 부산영락교회 전도사로 초임 부임하여 부산고등공민학교와 주일 교회학교 학생들을 섬겨 왔다.
한 교회에서 이런 오랜 세월동안 부임하는 것은 한국교회에서 퍽 드문 일이다.
위임목사로 32년, 현재에도 목회 2~3년 마지막 길을 걷고 있다.
부산영락교회 하면 6.25 전쟁으로 인해 남하한 한경직 목사님과 30여명의 피난민 성도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교회이다. 72년이 된 오늘에 부산영락교회는 코로나 감염 사태 전에는 성도 2500여명이 출석하는 부산의 대표적인 교회였다.
교회당 수용 인원은 불과 1000명 수준 공간이다. 이 교회는 고현봉 목사 총회장 취임 1년 전에 새 성전을 건립한 1000여평 공간에 부산 사법부가 중심이었던 서구 부민동 중간에 위치한 교회이다. 그 당시 두 개의 십자가 탑이 세워져 있어 두 십자가를 둘러싸고 성도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항간의 루머를 말해주듯이 한때는 분쟁의 현장이기도 했다.
고 목사를 비롯하여 윤성진 목사도 두 번씩이나 목사 징계를 당한 예장통합측 교회 가운데 경남 마산 문창교회 다음가는 교회분쟁 역사를 지니고 있는 아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교회이다. 결국엔 교단 탈퇴를 선언하고 백석교단으로 교단을 가입했다. 지금도 부산 안에 부민동 소재 부산영락교회와 하단동 소재 부산영락교회 같은 두 개의 이름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들 두 교회는 한 뿌리로서 서로 아픔을 치유하는 화해로 모든 문제를 풀고 서로를 위해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리더들이 많이 배출된 특별한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 현재 부산영락교회 윤성진 목사는 “이제 불과 은퇴 2~3년 남겨두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은퇴 마무리를 짓고 물러날까 고민하고 있다”고 귀뜸 해 주었다.
가장 아쉬었던 것은 교회 옆 건물 부산은행 자리를 아깝게 구덕 신협에서 경매를 낙찰받아 사지 못하였고 바로 길 건너 골든오피스텔 건물 20층 자리도 사실상 통일교에 넘어간 상태라 이것마저 놓쳐 현 위치에서 지하 주차장과 10층 규모의 새성전을 신축하는 방안을 놓고 기도하며 당회와 숙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윤성진 목사는 일찍이 거제 하청이 고향으로 어릴 때부터 하청교회에 출석하면서 부산장신대학교 통합교단에서 줄곧 학업을 연마했던 골통 통합맨이다.
지금도 적(교단)은 백석이지만 백석교단 수뇌부에서 교단 부총회장 출마 권유도 수없이 받아 왔지만 정중히 거절한채 오로지 교회 부흥에 올인하고 있다.
부산교계에 여러 연합체 대표회장 권유도 모두 사양하고 여러 교회 집회나 부흥 사경회 강사 초청도 모두 거절하고는 오로지 교회 한 곳에만 목회 전념하는 보기 드문 순수 목회자로 알려져 있다. 장로들이나 집사, 권사와 일반 성도들에게는 겸손하고 친절하며 정이 넘치는 목회자로 소문난 70대 목회자다.
아들은 서울대를 나와 장신대학원을 거쳐 서울 소망교회 부목사로 섬기다가 미국으로 학업을 위해 유학 중이고 딸도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제자들을 양육하고 있다.
서울 소망교회에서 유학비를 비롯한 모든 경비 제공 약속마저 사양하고 박사과정에 몰두하고 있다. 항간에 윤목사의 뒤를 잇는 세습 운운하는 소문에 윤 목사는 “그런 기우는 내가 살아있는 한 일체 없을 것이다”고 반박했다. 일찍이 양산 지역에 큰 대지를 구입하여 양산지역 복음화에 주력하기도 했다.
양산성전도 날로 부흥하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현 성전을 놓고 결정 여부에 주력하면서 조용히 은퇴 마무리를 지어 소망이 실현 되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윤 목사는 48년 인연이었던 필자와의 대화에 부활의 꽂망울을 피울 준비에 부담없는 담소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