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04(월)
 


임윤택 목사.jpg

“큰일 났어요. 빨리 와보세요” 초희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저는 놀란 마음에 아직 흥분해 있는 아이들에게 이끌려 정아가 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왜 무슨 일이야?”라며 문을 열자 손 끝으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목을 붙잡고 어쩔 줄 몰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정아가 한쪽 구석에 있었습니다. 정아는 4살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에 할머니와 지내다가 재혼한 아버지와 다시 함께 지내게 되었지만 새 어머니의 눈치에 마음 편히 지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너무 마음이 힘들면 할머니집과 이모집을 오가기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알 수 없는 일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고 새 어머니는 자연스레 정아 곁을 떠나갔고 마음 둘 곳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알게된 남자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몸을 잘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버린 정아를 모텔로 데리고 간 2명의 남자 친구들은 정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 일 이후 정아는 도망자처럼 학교를 그만두었고 불쑥불쑥 힘든 마음이 들 때면 자해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참 힘들었겠구나”라는 저의 말에 정아는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뚝뚝 흘렸습니다. 조금 전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듯이 표현하지 못한 내면의 고통으로 굵은 눈물이 핏방울처럼 뚝뚝 흘러내렸습니다. 

다음날 정아와 신경정신과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는 긴 시간 정아의 상태를 살피고 면담을 나눈 후 “지금 당장 입원해야 할 상태입니다. 이 아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지금 이 상태로 있는 것 조차도 감사한 일입니다. 더 큰 일이 생기기 전에 당장 입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상태의 심각성을 알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정아는 자신이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는지 “저 이젠 자해하지 않을게요.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라며 간곡히 사정을 했고, 원장님은 간곡하게 매달리는 정아에게 “그럼 당분간 약물복용을 하면서 상태를 지켜보자”고 하였는데, 약 때문인지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정아는 눈에 띄게 밝아지고 잘 적응하였습니다. 

어느 날 정아는 “저 있잖아요.... 처음엔 둥지 오게 된 것이 너무 싫었는데 지금은 너무 좋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전에 자해했을 때 둥지 애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게 아니라 힘내라고도 하고... 그러지 말고 힘들 때 얘기해라고 말해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병원 원장님께서 입원하는 것보다는 둥지에서 함께 부대끼며 마음의 힘을 길러가는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잖아. 저 이제 그 아이들 정식으로 고소하고 싶어요. 그동안 그 사실이 너무 싫어서 도망 다니고... 힘들면 자해하고 그랬는데..... 그 아이들은 밖에서 웃고 돌아다니고.... 제게 진심으로 사과한 적도 없고........ 오히려 저를 이상한 아이로 학교에 소문내서 더 힘들게 하고........ 이젠 더 이상 아닌 것 같아요. 정식으로 고소하고 싶어요”

“정아야! 네 생각이 그렇다면 방법을 찾아보자. 근데 시간도 지났고 사건도 어떻게 됐는지 모르기 때문에 확인도 해야 해. 그리고 그 아이들이 어떤 처벌을 받던 그것보다 난 네가 이 일에서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히고 대면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이렇게 모든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용기가 너무 좋다” 

“저도 그 아이들을 어떤 벌을 주라는 것이 아니고 무슨 돈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어요” 

“그래. 한 번 알아보자”

며칠 후 저는 정아를 데리고 한 변호사사무실을 찾았습니다. 그 곳은 비행청소년 위기청소년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평소에도 도움을 주시는 변호사님이 계시는데 정아의 이야기를 듣고 기꺼이 무료변론을 해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정아의 이야기를 들은 변호사님은 정아에게 미리 준비한 한 권의 시집을 건네셨다. 그리고 “정아야!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너는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아니란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란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 밖에 없는 걸작품이다. 소중하게 너 자신을 다루어라”며 따뜻한 말을 건네셨고 정아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비싼 변호사란다. 이거 공짜 아니야. 30년 뒤에 빚을 꼭 갚아야 한다”고 하자 정아는 한참을 생각한 뒤 “예... 얼만데요?”라고 목소리를 죽여 물었습니다. “액수는 말하지 않겠지만.... 나중에 빚을 갚을 때 넌 나에게 말고 너와 같은 아이에게 꼭 베푸는 것으로 갚아야 한다”며 환하게 웃으주셨습니다. 정아도 그러겠다고 약속하며 훨씬 가벼워진 걸음으로 나왔습니다.

“정아야! 아름다움은 앓음다음이란 말이 있단다. 그 동안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텐데 이 시간을 잘 극복해 보낸 다음에 더 아름다워질거야. 힘내라” 

“예? 아프고 난 다음에 더 아름다워진다고요? 너무 좋은 말이네요” 

“그렇지.... ”

“그럼 전 이제 아름다워질 일만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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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 ‘아름다움’은 ‘앓음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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