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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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회병법 10가지 가운데 망원경 목회병법과 현미경 목회병법이 있다. 문자 그대로 멀리 보는 것과 가까이 보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안동을 떠나 포항으로 임지를 옮기던 날, 예배당 마당을 가득 메우고 들어선 성도들의 얼굴에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헤어짐의 아픔과 슬픔들, 아니 절박하고 처절하다는 표현이 맞을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들……. 그날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아니 결코 지울 수 없는 목회 여정 중의 한 날이었다. 그날 새삼 보고 느끼고 깨닫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8년을 섬겨오던 교인들의 실상을 그날에야 더욱 확연히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황은 달랐지만, 포항중앙교회를 떠날 때도 그랬다. 함께 울고 웃던 교인들의 실상을 그날에야 제대로 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던 교인들은 무덤덤한 표정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항상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교인들은 저만치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제서야 깨달음이 왔다. 가까이 있는 것을 재대로 볼 수 있는 현미경이 내게 없었고, 전체를 볼 수 있는 망원경이 내게 없었다는 것. 서 목사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듯했던 사람들은 저만큼 거리를 두고 있는 느낌이었고, 서 목사가 없어도 아무 문제없다는 듯 저만치 거리를 두고 있던 교인들은 여기저기 서서 울며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주저앉아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소리 없는 울음을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만감이 교차하던 그날, 아직도 그날은 멀어지지도 지워지지도 않고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이 후로 나의 목회병법에 망원경 목회와 현미경 목회를 추가했다.

 

먼 곳만 보는 사람은 가까운 곳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가까운 곳만 보는 사람은 먼 곳에 있는 적에게 공격을 받는다는 경영리더십의 교훈이 생각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원경과 현미경 가운데 하나만을 갖고 있다.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이 성공을 하고 한 가지만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목회 현장 또한 다를 바가 없다.

“곤충의 눈으로 발밑을 보고, 매의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라.”는 교훈도 있다. 곤충의 눈은 현미경과 같고 매의 눈은 망원경과 같다. 곤충의 눈으로는 가까운 곳 나의 발밑을 보아야 하고, 동시에 매의 눈으로 먼 곳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동시에 나무와 숲을 모두 본다는 뜻이다. 기업경영이나 정치 현장에서도 가까운 곳만 보고 있어서는 트렌드의 변화나 외부의 위협을 감지하지 못하고, 반대로 먼 곳만 보고 있어서는 내부의 균열을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교훈한다. 그래서 성공자의 삶에는 반드시 곤충의 눈과 매의 눈을 확보한 시야가 있다.

 

1982년에 발매된 조용필 4집 <못 찾겠다 꾀꼬리>에 ‘비련’이라는 제목이 있다. 당시 매니저 최동규 씨는 이와 관련된 감동 이야기를 남겼다. <4집 발매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시골의 한 요양병원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14살 지적 장애가 있는 소녀가 한 번도 감정을 보이지 않고 있었는데 비련이라는 노래를 듣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하는 돈을 드릴 테니 직접 와서 노래를 불러줄 수 없겠느냐고 사정하는 것이다. 행사 하나만 나가도 엄청난 돈을 받던 가수왕 조용필 씨는 예정된 4개의 행사를 모두 취소하고 위약금까지 물어가며 그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지적 장애 소녀의 손을 잡고 비련을 불러주었다. 아무 표정도 없던 아이가 펑펑 울었고 부모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노래를 마친 조용필은 소녀를 안아주며 사인한 CD를 선물했다. 부모가 사례를 한다고 하자 조용필은 “따님 눈물이 제 평생 벌었던 돈보다, 또 앞으로 벌게 될 돈보다 더 비쌉니다.”라는 말로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순을 넘기면서도 국민가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조용필 씨의 현미경 철학을 통해 그의 망원경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은퇴 10년이 되었다. 함께 했던 많은 동역자들이 다시금 생각난다. 함께 울고 웃으면서 교회를 섬겼던 교인들이 새삼 조명된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을 통한 배신과 아픔, 가슴 치며 통곡했던 시간이 있었다. 가장 사랑하고 섬기고 돌보았던 사람들의 외면을 경험하면서 쓰라린 고통으로 잠 못 이룬 날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그들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했다. 그것은 망원경으로 보고자 하는 나의 인간관계관의 실천이었다. 조금은 멀리서 보는 것이 아름답기에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을 아름답게 다듬어 가고 싶은 관계개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곁에서 함께 웃고 울면서 이해하고 관용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동행과 동역을 경험하면서 오늘도 하루를 연다. 그 아름다운 관계가 부서지지 않기 위해 현미경으로 보는 인간관계가 일상이 되었다. 멀어져간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싶어서 망원경으로 보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는 삶을 이어가고 싶어서 현미경으로 본다. 걸어나온 내 인생의 모든 삶의 고진감래(苦盡甘來)를 본다. 그리고 이즈음 새삼 삶의 여정에 正視, 正思, 正心, 正言, 正道, 正行을 다짐한다. 동시에 유다서 11~13절 말씀을 묵상한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인간관계는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망원경과 현미경으로 나를 지키시고 돌아보시고 인도하시고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님처럼 그렇게 살아간다면 너와 나의 관계는 더욱더 아름답고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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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망원경과 현미경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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