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우리가 믿는 하나님
로마서 4장 17절
인식론에 있어서 아는 것과 믿는 것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경험론 철학자들은 오감으로 경험한 것에 의해 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합리주의자들은 이성에 의한 추론으로 지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인식론은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경험되지 않고, 이성으로도 추론이 불가능한 세계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요?
그 방법은 믿는 것입니다. 10세기의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안셀름(Anselm of Canterbury, 1033~1109)은 그의 책 『프로스로기온, Proslogion』에서 <믿음은 지식을 추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4세기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알기 위해 믿는다, Credo ut intelligam>와 통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을 알려면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과 천국, 영원한 생명의 구원 등은 손으로 만지거나, 눈으로 보는 경험이 불가능합니다. 이성적으로 추론하면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나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기준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는 유일한 진리의 근거는 성경입니다. 성경이 알려주는 대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고 놀라운 분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4장 17절은 이렇습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여기서 <그>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었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로 믿었습니다.
이건 정말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시시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창조자이신데,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모든 것이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이런 분으로 믿는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늙은 아브라함 부부는 아브라함이 백세가 되었을 때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자식이 하나도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가서 결박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번제물로 드리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마음은 얼마나 인간적으로 비통했을까요?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믿음에 대해 히브리서 11장 19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그는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보다 조금 뛰어난 분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다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근원으로 죽은 자도 살리는 분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어렵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위대한 하나님을 위대하게 믿을 때,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있을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