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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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어린 시절 기억속에 자동차 운전사 옆에는 항상 지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자동차도 워낙 귀한 시대라 차를 타 보는 것도 신기했지만, 기호, 숫자 모형으로만 되어 있는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가는 운전사도 놀라웠습니다. 


요즘은 어떠한가요? 자동차 앞쪽에 있는 네비게이션 화면이 지시하는대로 따가 가기만 하면 됩니다. 예전처럼 일일이 고속도로 번호를 위우지 않아도, 지도에 표시된 휴게소를 기억하지 않아도 네비게이션이 알아서 길을 인도합니다.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았지만, 이제는 네비게이션에 의존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기술과 경험에 어떻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지도든 네비게이션이든, 그것들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스티브 도나휴의 모래로 덮힌 [사막을 건너는 6가지 방법] 에서는 사막에서는 큰 바람이 한 번 불면, 길이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길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지도보다는 나침반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사막을 건너듯 우리의 삶에서도 나침반을 따라가야 합니다. 

사막에서 길은 바뀔 수 있지만, 나침반은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겪는 시행착오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도 분명한 목적의식과 방향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굳건한 신념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방향과 일관적으로 순종하는 자세가 유진 피터슨이 말한 삶에 대한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착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 기준, 교리가 확실하다는 틀에 갇혀 말씀을 대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실제적으로 살아내기 시작할 때, 나의 해석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말씀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삶에서 마주합니다.


이 때, 우리는 새로운 사고, 새로운 질문, 새로운 삶으로 다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 만나를 먹어야 살 수 있듯, 하나님의 백성은 매일 말씀과 함께 해야 살아낼 수 있습니다. 


목적을 향해 분명한 방향을 지시하는 나침반도 심하게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바로 주위 환경이 강한 자장(磁場)이 만들어 질 때입니다. 주위에 강한 자장이 생기면 나침반은 자기도 모르게 흔들리며 방향을 잃게 됩니다. 


저는 지금 우리 사회가 마치 자장에 흔들림을 받는 나침반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독교인은 확실한 자신의 정체성과 분명한 삶의 목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도자들도 일반 성도들도 세상의 유혹과 흐름이라는 자장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때,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거룩한 희망”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희망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 희망은 세상의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영원하고 변함없는 희망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희망은 유한합니다. 직장, 결혼, 출산이라는 희망을 쫓으며 살다 그 희망이 눈 앞에서 사라질 때, 사람들은 좌절하고 포기합니다. 영원한 줄 알았던 희망이 신기루처럼 사라저 버럽니다. 그리나 기독교가 말하는 희망은 인간의 틀로 한정짓는 고지론의 희망이 아닌 더불어 잘 사는 공동체의 희망이자,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과도 같은 희망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통한 죽음과 부활의 신앙, 이 거룩한 소망은 이땅을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거룩한 희망으로 작용되어 집니다. 섭리의 신앙은 우리의 삶을 흔들리지 않는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함께 이 길을 걸어갈 동역자 여러분, 우리 모두 이 “거룩한 희망”을 가지고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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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자기장에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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