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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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소설을 아는가. 이 소설을 쓴 마거릿 미첼은 원래 소설가가 아니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활동하던 신문 기자였다. 그는 기자 생활을 하던 중 예상치 못한 사고로 다리를 다쳐 큰 수술을 받고 집에서만 지내야 했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무료해 남북전쟁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명작가인 까닭에 선뜻 책을 출간하겠다는 곳이 없었다. 무려 32군데의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했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뉴욕에서 제일 큰 맥밀란출판사에서 그녀의 책이 출간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37년 퓰리처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영화화되어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을 휩쓸었고 책도 수백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진 운명은 그들의 목을 부러뜨릴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꺾어놓지는 못했다. 그들은 우는소리를 하지 않았고, 그리고 싸웠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모든 것이 사라진 뒤 조용히 되뇐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 나는 이렇게 바꿔보고 싶다.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뜰 거야.”

 

2024년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다. 바다는 거친 파도를 일렁이며 과거의 어둠과 혼란으로 다시 발목을 되잡으려 하지만 그 어찌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의 희망과 꿈의 잉태를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이제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는 역사의 강물에 보내버리자. 물론 천체 과학적인 면에서 볼 때 태양은 똑같다. 그러나 아무리 동일한 태양이라 하더라도 그 태양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바라보면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은 전혀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은 2023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해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2024년도라는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태양 중의 태양이요, 영원한 태양, 절대 무한자 되시는 태양이 있다. 그 태양은 정의 희망 생명의 태양이다. 말라기 선지자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공의로운 태양이 떠오른다고 하지 않았는가.(말 4:2)

 

이 태양은 우리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희망의 언어가 투사된 그런 태양과는 다르다. 우리의 희망과 비전과 가치로 다시 보고 해석하는 태양도 아니다. 이 태양은 본래의 태양이시고 영원한 태양이시며 태양 중의 태양이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무리 온 천지가 흑암의 세계라 하더라도 저 동녘 하늘에 눈부신 햇살이 떠오르면 온 세상이 광명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다윗 역시 인생 석양을 앞에 두고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하나님을 높이면 돋는 해의 아침 빛같이 된다고 고백했다.(삼하 23:3~4) 요즘으로 말하면 다윗이 인생 황혼 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후손들에게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고백하며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은 베들레헴 촌 동네 목동 출신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높여 주셔서 사울에게 씌워진 왕관을 자신에게 빼앗아 주셨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아침에 돋는 빛 같게 하신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만을 높이며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연합하고 전진해야 한다. 지금은 한국교회 연합을 반대하던 분들까지도 돌이키고 있는 좋은 상황이다. 편 가르기와 분열과 다툼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 빛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교회는 하나 되어야 한다. 특별히 연합기관이 하나 되어 반기독교 악법을 막을 뿐 아니라 새로운 의제를 제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기후, 저출산 등 인간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할 때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 ‘미스터 션샤인’으로서 빛을 비추어야 한다. 돋는 해의 아침 빛 같이 찬란한 빛을 발해야 한다. 2024년, 한국교회의 들녘에도 새 태양이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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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칼럼] 내일은 새 태양이 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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