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란 시(詩)적인 행위이다.”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입니다. 데리다는 손님의 이름도 묻지 않고, 보답도 바라지 않으며, 모든 것을 주는 환대를 ‘절대적 환대’라고 불렀습니다. 절대적 환대는 주인이 주체가 되는 ‘초대의 환대’가 아니라, 예상치 않은 방문과 기대치 않은 방문자를 아무 조건 없이 맞이하고 환영하는 ‘방문의 환대’입니다. 데리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절대적 환대는 도래자(방문자)에게, 마치 그가 구원자나 해방자라도 되듯, 나를 점령하고 내 안에 자리를 잡으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환대(hospitality)는 라틴어 ‘hospes’에는 주인(host)과 손님(guest), 두 뜻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주인이 손님이고, 손님이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주인과 손님이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데리다는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의(敵意)’가 판을 치기 때문입니다. 데리다는 결국 환대로 충만한 세상을 갈망하다, 환대가 사라지는 세상에서 영원한 환대가 가능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지금 시(詩)적인 행위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시인(詩人)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환대가 사라지고 각자도생이 판을 칩니다.
전국의 교수들이 선택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이익을 보자 의로움을 망각하다.”라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입니다. 「교수신문」은 전국의 대학교수 1,315명을 대상으로 ‘2023년 올해의 사자성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견리망의가 396표(30.1%)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견리망의는 논어 「헌문편(憲問篇)」에 처음 등장한 견리사의(見利思義)에서 유래합니다.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라.”라는 말인데, 견리망의는 반대의 뜻입니다. 이러한 견리망의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 있습니다.
19세기 말 러시아 최고의 ‘리얼리즘화가’로 러시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시초를 연 선구적인 작가 일리야 레핀(Ilya Yefimovich Repin, 1844-1930)의 <쿠르스크 지방의 종교 행렬>(1880~1883)이라는 그림입니다. 레핀은 톨스토이와 더불어 러시아 국민들이 국보로 여기는 예술가입니다. 세밀화, 인상주의, 성화(聖畵) 등의 다양한 장르로 작품을 남겼습니다. 레핀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표현된 세밀한 표정과 찰라의 순간 등을 역동적인 구조로 표현한 작품들을 보면 디지털시대인 현대 화가들이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그려도 쉽지 않을 만큼 뛰어난 작품입니다. 상황은 ‘쿠르스크의 성모’라는 이콘화를 코레나야 수도원에서 쿠르스크 시내로 옮기는 행사 모습입니다. 행렬에는 이콘화가 실린 화려하게 장식된 꽃가마를 어깨에 얹은 수도사들을 선두로, 농민들, 거지, 장애인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뒤를 따르고 있고, 경찰부터 군인, 귀족 등 중요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평론가는 이 그림을 “다양한 러시아 사회의 구성원들이 먼지가 풀풀나는 헐벗은 풍경을 가로질러 불편하게, 하지만 끊임없이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아무도, 심지어는 화가 자신도 볼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평합니다. 꽃가마를 진 수도사들은 마치 술 취한 사람들같이 무심하고 흐리멍텅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림의 한 가운데는 화려한 예복을 입은 사제가 혼자 걸어가는데, 시선은 그림을 보는 관중을 힐끗 바라보면서 손으로 자신의 금발을 넘기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엄숙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행사가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입니다. 왼쪽에 말을 타고 있는 경찰 앞으로 수도사들이 손을 마주 잡고 군중들이 가마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맨 앞 수도사는 목발을 집고 있는 장애인이 가마 쪽으로 가는 것을 지팡이로 막고 있습니다. 행렬 중간 중간 꽃가마 뒤쪽에 하얀 유니폼을 입은 기마 군인 하나가 행렬을 방해하는 듯한 사람에게 회초리를 크게 휘두르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상황을, 아니 이 시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환대가 사라지고, 시인들이 죽어가고, 이익을 보자 의로움을 망각한 종교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아기 예수께서 오시는 이 계절에 다시 절대적 환대가 시인들을 부활시키고 참종교인을 회복시키며 견리사의하는 세상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