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입니다. 노랫말과 비슷하게 최근 시월을 마지막으로 보내고 떠난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10월 6일에는 예수전도단(YWAM)의 창시자 로렌 커닝햄(Loren Cunningham)이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3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지만 이후로도 변함없이 주님과 가족과 친구와 비전 안에 살았노라고 가족들이 전한 바 있었지요?(CT) 청년 시절 바하마 여행 중 다음과 같은 환상을 보고 사역을 시작했다 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선교사 사택에 누워 성경을 펼쳤고, 늘 하던 대로 주께서 내 마음에 말씀해 주시도록 기도했다. 그러나 곧 이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세계 지도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지도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 앉았고, 머리를 흔들고, 눈을 비비며 다시 보았다. 파도가 해변에서 대륙으로 들어왔다가 밀려 나가고 그리고 더 깊이 밀려들어와서 그 대륙을 완전히 덮는 것이었다. 숨을 죽였다. 장면이 바뀌어 그 파도들은 청년이나 더 어린 소년들로 변하여 그 대륙들을 덮고 있었다. 거리나 음식점, 혹은 집집마다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사라졌다.”(『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중에서) 일평생 생생했던 그 비전을 붙잡고 주권국가든 종속국가든 거의 모든 나라를 방문한 유일무이한 존재였던 그가 이제 여권 말미에 마지막 스탬프를 받았습니다. 굿바이, 로렌!
10월 9일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노인이 92세로 세상을 떠나자 곧바로 “2만 원짜리 시계 차던 억만장자 영면에 들다”, “방 2칸 소형아파트에서 억만장자가 잠들다”와 같은 헌사들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35년 간 10조를 기부한 키다리아저씨”라 일컬어지던 척 피니(Charles Francis Feeney)였습니다. 면세점 사업(DFS)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구두쇠요 괴짜라 불리며 기인처럼 살다가 1997년 우연히 정부의 세무조사를 받다가 엄청난 기부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15년간 2,900회 40억 달러)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2016년 마침내 당시 소유하던 거의 모든 재산을 기증했는데 그 총액이 80억 달러 즉 한화로 10조가 넘어 놀라움을 선사했던 장본인입니다. 그는 또 “대부호들의 영웅”이라고도 불리는데, 선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그를 숭상하던 주식왕 워렌 버핏은 2006년부터 510억 달러(66조)를 기부했고, 역시 그를 흠모하던 컴퓨터왕 빌 게이츠는 2022년 기준으로 자신이 설립한 재단에만 591억 달러(80조)를 기부했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일을 피니는 어떻게 시작했을까요? 아일랜드에서 건너 와 가난했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숨은 봉사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이 지대했다고 합니다. 평소 그가 남긴 말들입니다. “오늘(today) 하는 기부가 훨씬 좋다(so much good)”, “돈이 필요한 이유는 편하기 위함인데 나는 지금 너무나 평안하니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얼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로 그 다음 날인 10월 10일에는 1927년 생 김남조 시인이 향년 96세로 소천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이분을 ‘사랑의 시인’이라 칭합니다. 평생 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가장 많이 지었고, 2020년 마지막으로 낸 19번째 시집 이름도 『사람아, 사랑아』일 정도니 그보다 어울리는 별명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랑이 아니라 신적 사랑을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어릴 적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고인의 시들을 별 생각 없이 공부했었는데 이제 알고 보니 기독교인이셨네요. 사랑만 그렸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남긴 <겨울 바다>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었던 새들이 죽고 없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와 남은 시간을 생각하며 “기도”를 떠올리다니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 아닙니까? <너를 위하여>라는 작품도 있는데,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고 합니다. 이쯤 되면 ‘기도의 시인’이란 별명도 하나 더 붙여드려야 하겠습니다. 그처럼 사랑과 기도로 일관했으니 그보다 더 유의미한 인생이 얼마나 더 있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이들이 저들처럼 아름답게 스러져갈 수만은 없는 법입니다. 10월 7일에는 축구계의 박종환 감독이 8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습니다. 1983년 당시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전대미문이었던 세계청소년축구 4강 신화를 창조했던 장본인입니다. 한국축구에 ‘붉은 악마’라는 타이틀을 안겨다 준 장본인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화려했던 전성기와는 달리 불우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지인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아내를 먼저 보내며 집도 없이 떠돌다가 지독한 생활고 속에 외로움으로 인한 우울증까지 시달렸다 합니다. 그러던 마지막 순간 그를 돌봐 준 사람은 가족도 지인도 아닌 한 기독교인이었네요. “자살하려고 해서 깜짝 놀라 찾아갔다. 저분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 싶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조선일보 2월 14일 보도). 수많은 사람들을 거짓 뉴스와 악의적인 보도로 괴롭힌 혐의로 조사를 받던 가로세로연구소의 김용호 씨는 10월 12일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극단적인 선택으로 47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한 인생을 살다간 고인의 명복을 빌고 싶지 않다’는 피해자들의 글들이 줄지어 올라옵니다. 아,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가야 합니까? 범상치 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시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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