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성도가 알아야 할 것
에베소서 1장 17~19절
본문은 바울 사도께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드린 기도입니다. 이때 바울은 감옥에 계셨습니다. 그는 감옥의 고통 중에도 성도를 위해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정말 주님의 충성된 종이요, 성도를 사랑하는 목자였습니다. 그는 육체의 안락함과 세상의 부귀영화 따위에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울이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알고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것을 바울이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위해 드린 기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반복되는 표현이 있는데, <알게 하소서>입니다. 성도는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알았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이 알아야 했고, 우리가 알아야 할 진리는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기독교강요』제1권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을 위한 이기적 동기에서 움직이게 되는데, 하나님을 믿는 것도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여길 때 열심을 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사람에게 결정적으로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존재, 사랑과 능력을 알 때, 그분이 온갖 우상과는 다른 유일한 참 신이심을 알 때 비로소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에베소서가 기록되던 당시 로마 세계에는 온갖 우상숭배가 판을 쳤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우상과 다른 분임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는데, 그 부르심 안에 있는 소망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생명으로 부르셨고, 믿음으로 부르시고, 사명으로 부르십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는 그 안에 엄청난 복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게 부르심 안에 있는 소망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장차 얻게 될 복을 소망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의 조상이요,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또 성도는 주님께서 주시는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 기업이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장소적 개념을 추구한다면 천국을 생각해도 좋습니다. 장차 주실 천국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풍성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아픈 것, 눈물, 죽음이 없는 영생의 나라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또 성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입니다.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능력입니다. 홍해를 가르치고, 어린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우리는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것들을 알았습니다. 그랬기에 감옥에서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 황제보다 크심을 알았고, 하나님 나라가 로마 제국을 백 개 이상 합친 것보다 크심을 알았고,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 있는 엄청난 복과 그 능력을 알았습니다. 비록 현실이 성도를 억압하지만, 그건 잠시뿐임을 알았기에 그는 철저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성도가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악을 행하고, 하나님 아닌 것들을 의지합니다. 목회자와 교회 중직자 중에도 하나님의 부르심 안에 있는 영광과 소망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세상의 것을 의지하여 교회와 교단과 교계의 권리를 얻으려고 온갖 추한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아마 이 세상이 영원할 줄로 착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무리 교회가 커도 하나님 나라에 비할 수 없을 텐데, 교회를 사유화하여 마음대로 주무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세상을 믿는 것이요, 자신을 믿는 것이요, 사단을 믿는 것입니다. 진실로 바울의 기도에 나오는 것들을 우리 모두가 알길 원하고, 그것으로 기뻐하면서, 세상을 극복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