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부산대학교 캠퍼스에서는 대학의 민주화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외치며, 고현철 교수가 몸을 던져 산화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민주화 되었는데, 지금 민주화를 위해 교수가 투신 자살을 하다니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치가 선진화되지 못하고,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자본의 논리와 공의가 밑받침 되지 않는 권력이 야합하면서, 사람들의 민주의식은 제대로 성숙되지 못한 채 이기적 욕망만을 부추기는 사회로 전락해 가고 있다. 급격한 경제성장이 우리 사회 속에 천민자본주의적 생활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것처럼, 급격하게 전환된 형식적 민주주의 제도는 철저한 생활 민주주의로 진전되지 못함으로써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최선의 삶의 방식으로 선택한 민주주의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민주주의 제도가 온전하게 완성된 완벽한 제도일 수도 없다. 특히 한국 사회와 같이 급격하게 민주화의 형식적 틀을 갖춘 나라는 실질적인 민주사회를 실현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부단히 제도를 바꾸고 개혁하며 온전한 민주 사회로의 지향점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중산층이 사라지고, 실업율이 높아지고, 청년들의 일자리가 사라져 경제적인 문제해결이 현실적인 급선무로 등장하면서, 내실있는 민주화에 대한 의식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제적 민주화가 한 때는 이슈가 되긴 했으나, 민주화는 사그라지고 경제활성화만 부르짖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온전한 민주사회를 위해서는 경제적 민주화도 중요한 한 요소이지만, 이를 포기한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 사회가 온전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서 후퇴하고 있음을 방증함이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전반에 흐르고 있는 시대적 현상을 민감하게 감각하기 힘들다. 이미 우리 사회도 철저히 개인화되고 다양화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어 자신의 문제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항이나 당장 이해관계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삶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만 있으면, 자신의 삶을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끝없는 쾌락추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산업이 이미 우리 삶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도 바울의 경고처럼 사람들의 삶이 돈을 사랑하며, 자기를 사랑하며,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예민한 촉수로 감각한 한 사람이 시인이었던 고현철 교수이다. 그가 남긴 유서 내용의 일절을 읽어 보자.
“교육부의 방침대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후보를 임용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대학의 자율성은 전혀 없고 대학에서 총장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부터 오직 교육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는 민주주의 심각한 훼손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이 대학과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무뎌 있다는 점이다. 국정원 사건부터 무뎌 있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교묘하게 민주주의는 억압되어 있는데 무뎌져 있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고현철 교수가 일차적으로는 대학의 총장 직선제에 관심하고 있었지만, 그의 시야는 학교 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 우리 사회 전반의 일상에 내재해 있는 현실적 부조리와 불평등에 예리한 언어의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가 남긴 한 권의 시집인 <평사리 송사리>에 산재해 있다. 그는 우리 사회 전체가 자신을 사랑하는데, 쾌락을 쫓아가는 데, 돈을 사랑하는데, 정신을 빼앗겨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삶을 향유하기 위해반드시 추구해가야 할 진정한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뎌진 이 사회 현실 속에서는 지난 민주화 시절 때와 같은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희생이 필요하다면 자신이 감당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한 것이다. 세상살이의 큰 흐름 속에 쉽게 야합하며 무디게 살아가고 있는 부끄러운 우리의 화인 맞은 양심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그는 1984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86년에 입대해서 군 신우회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했으며, 1988년 제대 이후에 개척교회인 가정 교회의 일원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세워나가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또 다른 차원의 민주적 성숙을 위해 몸을 던진 그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지난 9월 18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전국의 교수 1천 여명이 모여 전국교수대회를 열었다. 한국교회는 이 한 교수의 투신을 어떻게 해석하며 평가할 것인가? 한국교회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그러나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중산층이 사라지고, 실업율이 높아지고, 청년들의 일자리가 사라져 경제적인 문제해결이 현실적인 급선무로 등장하면서, 내실있는 민주화에 대한 의식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제적 민주화가 한 때는 이슈가 되긴 했으나, 민주화는 사그라지고 경제활성화만 부르짖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온전한 민주사회를 위해서는 경제적 민주화도 중요한 한 요소이지만, 이를 포기한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 사회가 온전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서 후퇴하고 있음을 방증함이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전반에 흐르고 있는 시대적 현상을 민감하게 감각하기 힘들다. 이미 우리 사회도 철저히 개인화되고 다양화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어 자신의 문제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항이나 당장 이해관계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삶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만 있으면, 자신의 삶을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끝없는 쾌락추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산업이 이미 우리 삶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도 바울의 경고처럼 사람들의 삶이 돈을 사랑하며, 자기를 사랑하며,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예민한 촉수로 감각한 한 사람이 시인이었던 고현철 교수이다. 그가 남긴 유서 내용의 일절을 읽어 보자.
“교육부의 방침대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후보를 임용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대학의 자율성은 전혀 없고 대학에서 총장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부터 오직 교육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는 민주주의 심각한 훼손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이 대학과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무뎌 있다는 점이다. 국정원 사건부터 무뎌 있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교묘하게 민주주의는 억압되어 있는데 무뎌져 있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고현철 교수가 일차적으로는 대학의 총장 직선제에 관심하고 있었지만, 그의 시야는 학교 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 우리 사회 전반의 일상에 내재해 있는 현실적 부조리와 불평등에 예리한 언어의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가 남긴 한 권의 시집인 <평사리 송사리>에 산재해 있다. 그는 우리 사회 전체가 자신을 사랑하는데, 쾌락을 쫓아가는 데, 돈을 사랑하는데, 정신을 빼앗겨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삶을 향유하기 위해반드시 추구해가야 할 진정한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뎌진 이 사회 현실 속에서는 지난 민주화 시절 때와 같은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희생이 필요하다면 자신이 감당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한 것이다. 세상살이의 큰 흐름 속에 쉽게 야합하며 무디게 살아가고 있는 부끄러운 우리의 화인 맞은 양심에 불을 지핀 것이다. 그는 1984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86년에 입대해서 군 신우회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했으며, 1988년 제대 이후에 개척교회인 가정 교회의 일원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세워나가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또 다른 차원의 민주적 성숙을 위해 몸을 던진 그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지난 9월 18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전국의 교수 1천 여명이 모여 전국교수대회를 열었다. 한국교회는 이 한 교수의 투신을 어떻게 해석하며 평가할 것인가? 한국교회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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