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병이어’ 기적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이 먹고, 12 바구니가 남았다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합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가벼운 동정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 하는 곳에 깊이 들어가, 그 사람과 함께 고통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사랑과 긍휼의 주님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해는 저물어가고, 제자들도 많은 무리로 인해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와 무리를 보내어 자기들이 뭔가를 사 먹도록 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 사고의 차이를 보십시오. 제자들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그들의 고통을 함께 지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짐을 져 주는 것입니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아파해 주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고, 함께 짐을 져 주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빈들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짐을 지기 위해, 사랑의 마음으로 달려 나가는 일에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자,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다시 질문합니다.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까’ 제자들은 이것은 도저히 안 되는 일이라며, 단정 짓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실수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자기 안에 있는 자원만을 보았습니다. 그 자원을 가지고, 계산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되지요. 자기의 능력만을 볼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해야지요. 그런데, 제자들만 탓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어떻게 합니까? 머리 굴리기 바쁘지 않습니까? 사람 찾아다니기 바쁘고, 이리저리 끌어 막기 바쁘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 순간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기도하십니까? 주님을 놓치면, 그때부터는 제자들같이 ‘부족합니다, 안 됩니다.’ 하게 됩니다. 부족할 그때가 바로 믿음의 눈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일은 내 자원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한 분만을 바라봅시다. 주님이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주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통해 배우는 교훈은, 우리의 인생에 부족함과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의 상황이 아니라 주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대답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답이 무엇인지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제자들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구해왔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의 한 끼 도시락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받아 축사하시고, 떼어주십니다. 그랬더니, 떼어도 떼어도 끝없이 양이 늘어납니다. 남자만 5천 명이 배부르게 먹고도, 12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빈들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함께 짐을 진다면, 필요한 자원은 우리 주님이 책임져주신다는 말이지요. 우리 주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이 오병이어를 드린 소년이 나옵니다. 이 아이는 작은 자기 도시락을 주님께 바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 드릴 때, 그 음식은 작은 것이 아니라, 기적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한 아이가 드린 오병이어가 주님의 손으로 옮겨지는 순간, 땅의 일이 하늘의 사건으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탁월한 능력이나 은사가 없어도, 겸손히 순종하고자 애 써는 그 열심을 주님은 귀하게 보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작지만 큰 헌신이 주님의 손에 들려져 큰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도 조용하게 교회와 주님의 일에 헌신하는 신실한 일꾼들이 많아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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