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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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인다고 했을 때 누가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 중에 몸이 가장 성한 사람일 것입니다. 정작 은혜가 필요한 중증 환자는 들어갈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 연못은 진짜 은혜가 필요한 병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습니다. 암 선고를 받고 죽게 된 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단순 감기 환자가 먼저 뛰어 들어가 버릴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만성두통과 복통 환자가 먼저 들어가 버립니다. 다리의 장애가 있는 사람이 먼저 들어가야 하는데 운동하다가 다리를 접질린 사람이 먼저 들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쟁과 대립으로 가득한 살벌한 현장이 바로 베데스다 연못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각종 환자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로 인해 영적 질병에 걸려서 무기력, 무능력하게 살아가는 인생들의 영적인 상태를 나타내 줍니다. 그들은 눈이 멀어 있어서 천국의 아름다움과 지옥의 고통스러움을 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다리를 절고 있어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고 긴 길을 바르게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중풍병자와 같아서 진리를 향하여 움직이거나 진리 안에서 활동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예 진리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불신자들, 모든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 모든 행위로 구원을 이루려는 자들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들도 비슷합니다. 무한 경쟁시대 속에서 교회와 교회도 형제가 아닌 경쟁자입니다. 교회와 교회끼리 경쟁합니다. 서로 큰 건물 짓기 경쟁을 합니다. 서로 사람 수 늘리기 경쟁을 합니다. 몇 십억, 몇 백억, 몇 천억 단위의 건물을 짓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큰 건물이 많은 사람을 흡수하고 장기적으로 자신들의 목표를 이룰 발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왕들을 뽑습니다. 진돗개 전도왕, 양육 전도왕, 파워 전도왕, 능력 전도왕, 웃음 전도왕, 심지어 마사지 전도왕까지 뽑습니다. 그리고 이 전도왕들은 자신들의 노하우를 집회를 통하여 전파하고 다닙니다. 이런 교회들끼리의 경쟁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경쟁도 치열합니다. 감투 경쟁, 기득권 경쟁, 자기중심적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경쟁 원리가 교회 안에도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넘쳐야 할 교회에 38년 된 병자와 같이 남을 원망하며 남을 탓하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현실입니다. 은혜는 사라지고 온갖 원망과 불평과 불신과 판단으로 세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혹자는 세상보다 더 이기적이고 더 자기중심적인 곳이 교회라고까지 말합니다. 참으로 자비의 집에 자비가 없습니다. 은혜의 집에 은혜가 없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자리에 누워서 예수님을 보고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는 정말 자비와 은혜의 실체가 되신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예수님을 찾고 그를 절대적으로 의지합니까?

 

주님이 계실 때에야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이 되고 맙니다. 주님이 계셔야만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라고 부를 수가 있게 됩니다. 주님이 계실 때 그곳은 교회가 됩니다. 우리는 베데스다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 살아야 합니다. 베데스다는 오늘날 교회입니다. 은혜와 자비가 가득한 곳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베데스다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신앙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만을 소원해야 합니다. 예수만이 소망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만이 치유자이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런 고백이 있는 독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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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 은혜의 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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