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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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 교수(부산장신대학교 조직신학)

나이 들고 은퇴가 가까워지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시간 생각하면 아쉽고 후회스러운 점 있지만 감사할 일들이 더 많다. 많이 모자란 사람이 그저 은혜로 여기까지 왔구나 싶다. 아울러 남은 시간 더 선하고 아름답게 살아보자고 다짐 한다. 그 가운데 요즘 들어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자 에피큐로스를 곧잘 생각한다.

 

에피큐로스(BC 341-BC 270)의 가르침은 대단히 직설적이고 분명하다. 곧 쾌락은 좋은 것이고, 삶의 목표는 가능한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생의 기쁨과 쾌락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우리 삶에서 떼어내려고 했다. 가령 신들이 있고 그들이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신들의 심판과 저주를 생각하며 살면 누구도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조언한다. ‘신들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설혹 있어도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당신에게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신들 생각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각자 알아서 행복의 길을 찾으라.’ 더 나아가 그는 영혼도 내세도 부인한다. 이들은 몸이 죽으면 영혼(정신작용)도 끝나고 그것으로 끝이니 영혼이니 내세니 하는 데 골몰하여 지금 눈앞의 기쁨과 즐거움을 놓치지 말라고 조언한다.

 

에피큐로스의 이런 주장 때문에 그의 사유는 보통 쾌락주의(Hedonism)로 간주된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쾌락주의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 첫째, 이들이 말하는 쾌락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는 쾌락이었다. 그는 귀족이나 부자 남성 같은 특권층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행복을 누릴 권한이 있으며 사회 역시 이처럼 그 구성원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쾌락에도 등급이 있다고 보았다. 이들이 볼 때 맛있는 것을 먹고, 원하는 물건을 소유하며 마음에 드는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것 역시 쾌락을 주지만 이런 종류의 쾌락은 일시적이고 열등한 쾌락이며 정말 중요한 것은 정신적이고 영적인 쾌락이다. 곧 이들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 해방되어 평정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고 진정한 쾌락이며 삶은 이런 높은 차원의 쾌락을 지향하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필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신도 없고 내세도 없다는 에피큐로스의 주장은 물론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 있고, 행복에는 등급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누구도 차별 없이 모두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깊이 공감한다. 실상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궁극적 이유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딸답게 긍지있고 행복하게 살게 하려 하심 아닌가? 그래서 필자는 최근 들어 좀 더 행복하게 지낼 길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취미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기타를 다시 손에 잡았고 탁구를 치기 시작했다. 서툴지만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고 친교를 나누니 즐겁고 행복하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먼저 내가 행복해야 행복한 설교, 행복한 강의를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역시 스스로 먼저 행복하여서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분들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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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 교수]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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