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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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정의 《그림으로 신학하기》

최근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교계에도 기독교 인문학과 관련된 책들이 심심치 않게 출간되고 있다. 그동안 《구약성서: 마르지 않는 삶의 지혜》, 《교회 밖 인문학 수업》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기독교인문학자인 저자는 교리나 신학의 내용을 서양종교화의 거장들의 작품을 매개로 쉽게 풀어놓고 있다. 성서에서 죽음등 12개의 꼭지로 나눠 성서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210여 쪽의 이 책에는 1080년작 치마부에의 작품부터 1951년 피카소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사에 길이 남을 명작 139점이 동원되어 눈을 즐겁게 한다. 그동안 신앙적인 그림에 목말랐다면 갈증을 해소하는 청량제가 될 것이다. 그림을 보는 안목을 키울 뿐 아니라 쾌도난마식 경쾌한 글솜씨는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 저자소개 ∥ 구미정 

이화여대 철학과, 동 대학원 기독교윤리학 박사. 신학과 인문학을 넘나들며 세상의 다채로운 풍경에 신학적 사유를 덧입혀 재미있게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이은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며,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문화예술 계간지 『이제 여기 그 너머』 편집인이다.

 

 

◇ 저서∥《한 글자로 신학하기》와 《두글자로 신학하기》, 성경 속 여성 인물들을 새롭게 조명한 《성경 속 세상을 바꾼 여인들》 등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교회 밖 인문학 수업》 구미정 지음 / 옥당 / 2019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 김학철 지음 / 비아 / 2022

《인문학은 성경을 어떻게 만나는가》 박양규 지음 / 샘솟는 기쁨 / 2021

 

 

 

 

기독교인문학 〈44〉

 

                                                              “ ‘붓을 든 신학자’들의 그림읽기 ”

                                                                 -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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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의 <하얀십자가> 1938

 

 

붓을 둔 신학자들

“밀레는 하얀 빛을 가진 사람이고 어느 누구보다 훌륭해, 밀레에게는 복음이 있거든, 밀레가 그린 그림이 훌륭한 설교와 무엇이 다르랴? 제법 괜찮다는 설교도 밀레의 그림과 비교하면 검게 보여”(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에서)

 

김길구 지리한 장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는 물폭탄으로 인한 피해로 농민들의 탄식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지구촌 기후위기의 여파로 우리나라도 온대의 장마가 아닌 잦은 비와 국지성 호우가 일상화되는 아열대성 우기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 실감 납니다. 빨리 정상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책 다 보셨지요. 139점의 거장들의 걸작들을 명쾌한 해설과 함께 사랑에 빠진 요 며칠 간은 눈이 호사를 누릴 수 있었는데 여러분들도 여름휴가 때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현호 저도 즐거웠죠. 성서화를 접할 기회가 적은 개신교도로서 그림에 담긴 사연이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습니다. 화폭 담긴 화가의 붓질과 색상 못지않게 내면의 신앙과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그것을 읽어내는 작업에서 얻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류지원 저자 구미정 목사는 신학과 인문학을 넘나들며 글 쓰고 강의하는 기독교 인문학자로 진지하고 심각한 우리의 신학 풍토 속에서 그녀의 이야기 신학은 자유롭고 경쾌한 놀이 같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요. 말과 글로 삶의 지혜를 나누는 이런 창조적 시도가 기존의 틀을 넘어 하늘에 잇대어 세상을 꿈꾸고 있는 자유인? 이번 책은 대학의 서양종교화 교재로 기획되어 출간했다는데~분량에 비해 내용이 풍부하고 편집도 짜임새가 있어 종교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는 생각이 듭니다.

김길구 제목이 《그림으로 신학하기》 입니다. 그림과 신학의 결합이지요. 작년인가요 우리가 다룬 박양규의 《인문학은 성경과 어떻게 만나는가》란 책이 떠오릅니다. 우선 미술에 대한 얘기로 시작해서 그림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통해 저자의 신학을 알아보는데 12꼭지를 다 다룰 수 없고 그중 2~3꼭지의 맛만 보겠습니다. 지면 관계로 작품들을 게재치 못해 의미 전달이 잘 될지 모르겠네요?

 

나그네-자발적 유목민이 된다는 것

김현호 이 장에서는 아브라함의 도시문명탈출기를 얘기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아브람을 선택하시고 이름을 바꾸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어로 ‘아브’는 아버지, ‘람’은 높다는 뜻이고, 그의 아내 사래는 ‘공주’ 또는 ‘귀부인’을 뜻하는데 두 이름 다 부귀영화를 간절히 바라는 부모의 열망이 담겨 있는 이기적인 이름을 ‘만인의 아버지’를 뜻하는 아브라함과 ‘만인의 어머니’ 를 뜻하는 사라의 이타적인 의미를 담은 새 이름을 줍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사사로운 개인에서 공공의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의미로 이러한 존재론적 혁명을 거치지 않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다며, 극단적인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기복신앙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류지원 아브라함의 사례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전제는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도시 문명과 단절하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부터 끝까지 사막의 여기저기를 식솔들과 함께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 인생이 펼치는 얘기 중에 그림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아브라함과 사라와 하갈 얘기 그리고 이삭을 번제 제물로 드리는 〈이삭의 희생〉 등의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같은 듯 다른 이미지

김길구 모리아산의 〈이삭의 희생〉을 소재로한 거인 3인의 작품을 비교한 적이 있는데 개신교도인 렘브란트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어린양 예수를 떠올리게 된다면, 가톨릭 신자인 카라바조 작품에서는 ‘은총’의 교리를 기반으로 한 개신교를 비웃는듯한 해석이, 그리고 유대인의 시각에서 샤갈은 울부짖는 이삭의 어머니 사라를 등장시켜 이삭, 예수,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모두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임을 표현한 작품이 기억납니다.

류지원 일반적으로 가톨릭 미술은 종교적 메시지와 상징성을 중시한다면, 개신교는 종종 개인의 신앙경험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획일적으로 그렇다기 보다는 개인의 스타일이나 시대적인 요소 등에 영향을 받지요.

김현호 일반적으로 가톨릭 그림은 과도한 장식과 화려한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이는 고대 로마 예술 전통과 결합하여 피렌체, 르네상스, 바로크 등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에 반해 개신교는 실용적이고 소박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죠.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류지원 이번에는 가난을 소재로 한 얘기를 해 볼께요. 가난하면 떠오르는 화가가 있지요? 밀레와 빈센트입니다. 〈씨뿌리는 사람들〉과 흔히 만종으로 알려진 〈삼종기도〉의 작가 밀레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평화로운 농촌의 아늑한 풍경을 떠올리겠지만 이 작품이 충격적인 이유는 이전에는 화폭의 주인공들이 권세 있고, 돈 많은 사람 들이였는데 처음으로 힘없고 가난한 농부를 주인공으로 그것도 살롱에 전시까지 했으니, 혁명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김길구 시기가 묘해요. 민중화가 밀레의 〈씨뿌리는 사람〉이 1850년, 영국 런던 다락방에서 그 유명한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 출간된 해가 1848년이었으니 사회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죠.

김현호 구약성경에서 ‘가난’은 칭찬받을 대상이 아니였어요.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라고 선언하지요. 저자는 팔복의 첫 복, 가난을 설명하기 위해 조용필의 〈칼리만자로의 표범〉, 가난한 전도자 빈센트, 밀레의 〈씨뿌리는 사람〉과 〈삼종기도〉, 빈센트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등장시킵니다. 밀레와 빅토르 위고를 좋아했던 빈센트는 문명을 일으킨 네피림 같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작고 힘이 없지만 가난한 ‘씨 뿌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면서 이 세상을 살만한 세상으로 만든다고 증언합니다.

김길구 평생 동생 테오에 기대어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며 빈센트가 간 길은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어요. 사진기가 발명되고 더 이상 사진찍듯이 묘사하던 시대가 저물어가던 시기에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자기가 보는 대로 그리는 게 진짜 화가’라는 발상의 전환이 현대회화의 길목에 서 있었던 화가로 평가받는 이유이지요.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사람을 말하자는 것이다

김길구 감정편에는 헤롯왕에 의한 자행된 유아학살을 그린 조토의 〈무구한 이들의 학살〉, 스페인 낭만주의 화가 고야의 나폴레옹 군대가 자행한 마드리드 시민들의 학살을 다룬 〈1808년 5월 3일의 학살〉, 그리고 1937년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여 유명한 〈게르니카〉의 작가 피카소가 1951년 한국전쟁의 참상을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 등을 통하여 전쟁으로 인한 국가폭력의 참상을 고발한 내용도 있어요.

김현호 회화에 얽힌 깨알 상식도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미켈란젤로의 〈모세〉라는 조각상과 〈모세가 자기 백성의 고난을 보다〉는 그림, 그리고 샤갈의 〈십계명 돌판을 부수는 모세〉란 작품을 보면 모세의 머리에 뿔이 두 개가 소처럼 솟아있어요. 그러나 개신교도인 렘브란트의 작품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던지는 모세〉라는 작품에는 뿔이 없어요. 이는 성경의 오역에서 비롯된 실수 때문인데요, 초기 기독교 교부 히에로니무스가 히브리어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일어났어요. 고대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고 자음이 있는데 모음을 어떻게 발음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데 카란(빛이 났다)을 케렌으로 잘못 읽어 코르니타(뿔이났다)라고 옮긴데 따른 착오 때문입니다.

류지원 수박 겉만 핥다가 만 느낌입니다. 저번에 다룬 박양규의 〈인문학은 성경을 어떻게 만나는가〉에 나오는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할께요. ‘한국의 기독교 집단이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인문학과 관련하여 대담하게 던지는 질문이다. 성경적이지 않다면 인문학으로 성경을 읽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이다. 태도에 강조점을 두는 이유는 인문학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누구든지 밀레와 고흐의 시선은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인간을 향한 ‘시선’이지, 인문학 ‘지식’이 아닌 이유이다.’

김길구 우리만의 게토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능력을 잃어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할 영적감수성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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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문학] “ ‘붓을 든 신학자’들의 그림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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