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좋은 부모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 경제적인 자본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자본이 필요합니다. 부모에게는 자녀 양육에 있어서 충분히 여유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그건 바로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를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이해지능입니다. 나의 연약한 모습을 바라보고 인정하는 그 모습을 통해서 자녀의 연약한 부분들을 공감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부모는 자녀의 좋은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들이랑 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자녀를 보면 부모는 “야! 같이 놀자고 그래! 왜 말을 못 해?”라고 다그치기보다 그냥 자녀의 그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면 됩니다. “내 아이 성격이 내성적이구나! 수줍음이 많구나.”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주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자꾸만 아이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하고 닦달하고 다그치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바로 부모 본인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은 내가 소심한 성격인데 그래서 내가 못나 보이고 외톨이 같은데 그게 내 문제다 보니까 그걸 또 바로 그렇다고 인정할 수는 없단 말이죠. 그래서 내가 인정할 수 없는 그 안 좋은 감정을 딸에게 던지는 것입니다. 그걸 바로 심리학 용어로 ‘투사(投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계속 그 문제로 아파하는 아이에게 안 좋은 말이 나옵니다. “너 왜 이렇게 못나게 굴어? 너 바보야?”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자꾸 이런 말이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이 나의 문제인데 그것을 나의 문제로 인정할 수 없으니까 그것을 자녀의 문제로 바꾸고 그 자녀를 문제아로 몰아가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렇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나는 완벽한데 너는 왜 이래?”라고 하는 염려로 시작되었지만, 이 말이 점차 짜증으로 바뀌고 그것은 날카로운 분노가 되고 마침내 공격하는 말이 돼서 아이를 점점 쓰러뜨리고 마는 것입니다.
‘나는 완벽한데 자녀는 왜 이 모양이지?’ 하는 부모들이 특히 교회 안에 많습니다. “나는 너무 멀쩡하고 신앙이 좋은데 자녀는 왜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는 분들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럴 때마다 한 번쯤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고 행동할 때, 이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요? 점점 이 아이는 그 부족한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자라게 됩니다. 엄마의 심한 말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말 그대로 못난 아이로 자랍니다. 그럼 결국 나의 못난 모습을 아이가 그대로 가진 채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부모의 못남을 물려주는 걸까요? 우리에게도 영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심리적인 자본입니다. 자기를 돌아보는 능력 말입니다. ‘나는 이러한 모습도 있고 저런 모습도 있다. 나는 한 가지 모습이 아니다. 이런 약한 면도 있지만 이렇게 좋은 면도 있어. 내 안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 이것이 통합적인 자기 이해입니다. 나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하고, 자기를 올바로 바라볼 때 우리는 자녀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다윗은 시편 139편 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4)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합니다. 내 안에는 너무나 많은 내가 있는데 그게 다 나라는 걸 인정한다는 겁니다. 좋아 보이는 나, 약한 나, 반면에 또 부족하고 답답한 나를 다 인정하고 나면, ‘아! 하나님이 그러한 나를 통해 하시는 그 구원과 역사가 너무너무 기이하다’는 것을 내 영혼이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께 감사하는 것이고 또한 주께서 하시는 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나 자신을 바로 알 수 있고 나를 나답게 지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가져갈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녀와도 올바른 관계를 맺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에게 부모이기 이전에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아시고 나를 이해해 주시는 하늘 아버지를 의지할 때,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자녀를 알아주게 되고 공감하는 충분히 괜찮은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나는 맨날 1등만 했는데, 나는 멀쩡했는데, 나는 친구도 많고 난 너무너무 완벽했는데 넌 왜 이러니?”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항상 나의 연약함을 바라보고 인정하고 공감하는, 충분히 좋은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완벽한 부모가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좋은 부모요, 그거면 족합니다. 여러분, 그런 모습을 가질 때 우리 아이들이 부모님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겁니다. 완벽한 부모가 존경받는 게 아니라 자기를 드러내 보이고 때로는 사과하고, 때로는 고백하고, 때로는 화해를 청하는 부모가 진정 존경받는 부모입니다. 그렇게 충분히 좋은 부모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를 닮아가고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살리며 믿음으로 견고케 하는 또 한 세대로 굳건하게 설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