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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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인 칼 트루먼은 동성애나 낙태 문제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관점을 가지면서도 공평과 정의의 문제에 있어서 진보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쓴 ‘진보 보수 기독교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일차적인 이유는, 미국에서 복음주의 교회가 보수적 정당 정치와 기독교적 충성을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복음주의 교회에 속한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교회를 등지는 위험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나의 확신 때문이다.” 그가 지적하는바 오늘날 미국교회가 당면한 이런 문제는, 항상 미국교회를 본보기로 삼으려고 하는 한국교회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만약 어떤 그리스도인이 특정 정당의 정치를 기독교적인 것과 동일시하게 된다면, 그는 그 정당에 대한 지지를 주님께 대한 충성으로 간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를 말하고 정치 행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정치가 아니라, 신앙 행위를 하고 있다고 착각할 것이다. 그가 목회자라면 설교 강단에서 정치 이야기하는 것을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고 생각하면서 교인들을 바른 신앙으로 일깨우고 있다고 확신할 것이다. 더 나아가 자기처럼 하지 않는 사람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문제가 있다고 여길 것이다. 이것이 정치를 종교화하는 것인데, 이런 정치의 종교화는 교회의 정치화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동안 정교분리를 강조하면서 정치를 신앙과 무관하게 여겼던 한국교회는 오늘날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작년에 만났던 한 선교사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그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몇 년 전만 해도 그가 한국을 방문하면 만나는 목회자마다 주로 목회나 선교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놀란 것은 그 목회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열심히 정치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 스스로가 정치를 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담임목사들이 목회에 관해 정보를 나누는 단톡방에 어떤 목사가 정치 이야기를 자꾸 올렸다. 한 분이 참다못해 ‘이 방은 정치가 아니라 목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입니다’라고 하자, 이어서 올라온 답글은 ‘나는 정치가 아니라 신앙에 관해 말하는 것입니다’였다. 이런 사고에서 더 이상 대화가 가능할까? 나는 단톡방에 정치 이야기를 올린 것보다 이런 사고방식이 더 심각한 문제라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 교회 안에 이런 왜곡된 확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주로 모인 다양한 기독교 연합회는 선거철만 되면 아무런 가책이나 문제의식 없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기독교의 이름으로 신문에 올린다. 본인들은 이것을 기독교를 위한 사명이라 여길지 모르나, 실상은 교회를 타락시키는 행위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한 국가 안에 살고 있기에 정치와 무관할 수 없고, 무관해서도 안 된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세상 국가에 대해서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를 가르치고 있고, 정치적인 책임과 아울러 예언자적인 사명도 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 국가와 교회의 관계, 공적 신앙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기독교 역사에서 국가와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지 못함으로 인해 교회가 타락하는 일들은 항상 반복되었다. 중세 가톨릭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유럽제국의 개신교회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특별히 독일교회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들은 극우 정당인 나치가 집권했을 때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적극 환영했고, 히틀러를 하나님이 독일교회를 위해 보낸 지도자라고 추켜세우며 지지했다. “나치즘은 실증적인 기독교이고, 히틀러(나치)는 이제 하나님의 영과 의지가 독일 민족의 교회를 향하는 길이다.”(‘독일 신앙인의 고백’ 중) 이들은 정치를 기독교화하면서 정당에 대한 지지를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간주한 것이다. 독일교회가 보여준 이런 왜곡된 현상은 그 양상이 조금씩 다르지만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반복되고 있다. 트루먼은 미국교회의 문제 역시 정치를 너무 종교적으로 다루는 데 있다고 말한다.

 

정치는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다. 아직 죄가 관영하는 세상에서 어떤 정치이념도 성경의 가르침과 동일시될 수 없고 오히려 그 진리 앞에서 다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좀 더 나은 정치와 좀 더 나쁜 정치가 있고 좀 더 나은 정치이념과 좀 더 못한 것이 있을 뿐이다. 민주 진영을 대표할만한 정치인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는 나쁜 체제이지만 지금까지 시도해본 다른 어떤 체제보다 낫다고 했다. 그런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현실 정치에서 조금 물러나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에 의거해 모든 정당을 초월한 사회비판적인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특정 정당이나 이념을 기독교 진리와 너무 밀접하게 연결하는 것이야말로, 이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 더 나아가 양식 있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멀어지게 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이런 교회의 정치화는 결국에 가서는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면서 교회를 타락시킨다는 사실을 깊이 숙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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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범목사] 정치화의 위기에 서 있는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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