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0(목)
 


홍석진 목사.jpg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 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쫙쫙 찢어지어 내 몸이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양명문 시).

 

작고한 성악가 오현명 씨가 자주 부르던 <명태>라는 가곡입니다. 이 노래는 6. 25 전쟁 기간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젊은 오현명은 대구에서 공군정훈음악대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UN 제 7군단의 연락장교로 복무하고 있던 변 훈이라는 작곡가가 건네준 종이뭉치에 이상한 노래가 한 곡 있더랍니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죠? “악보를 보니 그게 아무래도 노래가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야, 이거 무슨 노래가 이래?’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노래의 멜로디 같지도 않은 멜로디가 그 가사와 함께 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자꾸 흥얼거리게 되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왠지 정겹게 느껴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현명은 부산의 해군정훈음악대로 옮기게 되었고, 당시 임시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던 한 극장에서 이 노래를 초연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응은 혹독했습니다. 평론가들도 대중들도 이게 무슨 가곡이냐며 ‘노래 같지도 않은 엉터리’라는 비난을 퍼부었던 것입니다. 노래 부른 사람도 사람이지만 정작 충격을 받은 이는 작곡가 변 훈이었고, 그 길로 그는 음악계를 은퇴하고 다른 인생(외교관)을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현명은 이상하게도 애착이 가는 이 노래를 포기하지 않고 기회 닿는 대로 소개하다가 마침내 1964년 청년들을 대상으로 음악회를 열었을 때 엄청난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재탄생한 <명태>는 어떤 노래도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한국을 넘어 마침내 세계를 향해서도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명태는 한국에서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요? 한국 근해에서 명태가 실종된 지 어언 30년이 흘렀다고 합니다. 아마도 환경 문제 특히 기후 변화가 연관이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명태가 제일 많이 잡히는 바다가 바로 일본의 후쿠시마 앞바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명태를 그리 잘 먹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한국으로 수출한다고 하고,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생태는 거의 모두 일본산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수산물을 조사해 보았더니 유독 명태에서 방사능 검출 확률이 높았다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말린 명태도 시원한 생태탕도 마음 놓고 먹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얼마 전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고,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한국 전문가들의 현장시찰단 파견에 합의했다”는 발표 내용에 따라 5월 하순에 21명의 시찰단이 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일본 정부는 자신하고 있지만, 후쿠시마의 원전사고는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절대 아닙니다. 2011년 3월 11일 진도 9.0의 엄청난 지진으로 인해 파괴된 후쿠시마 원전의 복구를 위해 걸리는 시간을 전문가들은 100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도 녹아버린 핵연료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겠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지만, 일각의 주장대로 이 모든 우려가 단지 기우에 불과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것만 해도 억울한데, 이제는 세슘이니 플로토늄이나 스트론튬과 같은 듣도 보도 못한 물질들의 위험 아래 살아가야만 하는 당사자인 명태의 고충 말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롬 8:21) 아는 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냥은 생태로, 말려서 명태로, 얼려서 동태로, 어린 대로 노가리로, 아낌없이 다 주었던 명태들의 헛헛한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명태(허허허) 명태라고(음하하하)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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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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