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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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로 승부하는 영화의 구조

못된 캐릭터가 변하여 선한 영향력을 주는 인물이 되는 이야기는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형식으로 자리 잡으며 기독교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죄와 은혜라는 성경이 말하는 인간관과 구원관이 내재해있기 때문이다.

죄를 저지르는 밉상의 행동과 성격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역할을 한다. 자신이나 이웃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중의 기대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죄에 대한 징벌로서 심판을 받는 캐릭터의 모습이다. 못된 성격에다 이상한 짓을 한 사람은 그에 대한 대가로서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논리가 여기에는 깔려있다. 다른 하나는 은혜라 말할 수 있는, 예상치 않는 누군가의 도움과 친절로 인해 밉상이던 캐릭터가 선한 이미지로 변하게 되는 일이다.

예수님을 만난 세리장 삭개오 이야기(눅19:1-10)는 캐릭터의 변화를 통해 감동을 주는 이야기의 원형적 성격을 보여준다. 삭개오는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에서 자기 백성의 돈을 뜯어다가 로마에 바치는 세리였던 까닭에 대중들의 비난을 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작은 키가 주는 외모 등은 그가 부정적 이미지가 잔뜩 묻어나는 캐릭터의 소유자란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뒤 그는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눅19:8)는 폭탄 발언을 하는 등의 대중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선한 캐릭터로 변신한다.

이것은 교훈과 재미가 공존하는 이야기의 본래적 성격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요2:1-10)처럼 인생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과 변화된 인간이 보여주는 선한 삶의 가치는 대중이 선호할 뿐만 아니라 성경적 가치를 품은 행복한 이야기인 셈이다.

마크 포스터 감독이 만들고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 <오토라는 남자>(A Man Called Otto)는 전형적인 꼰대 기질의 남성이 같은 주거 단지에 이사 온 멕시코 출신의 가족과 조우하면서 겪게 되는 인생 변화를 그리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를 암으로 떠나보내고 삶의 의욕도 잃어버린 채 신경질만 살아있는 오토(톰 행크스)는 자신의 앞집으로 이사 온 마리솔(마리아나 트레비노)과 그의 남편 토미(마누엘 가르시아롤포)네 가족을 귀찮은 사람들로 여기기 시작한다. 주차를 제대로 할 줄도 모르고 사다리며 공구를 빌려달라고 부탁하는 등 조용하기만 했던 오토의 일상은 이사 온 사람들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다만 마리솔이 감사의 뜻으로 놓고 간 음식들이 오토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드는 바람에 그나마 굳어 있던 마음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비록 남의 집에 세 들어 이사를 왔지만 자녀가 있는 시끌벅적한 마리솔 가족이 오토의 고독한 인생에 큰 변화를 주게 될 것이란 점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누가 죽음을 멈추는가?

임신한 아내가 교통사고로 인해 유산의 아픔을 경험하고, 장애를 갖게 된 아내마저 세상을 떠난 뒤 외로운 오토의 선택은 아내의 뒤를 따라가는 일이었다. 철두철미한 성격의 오토는 전기도 전화도 끊으며 죽음을 기획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오토가 기획하는 네 번의 죽음을 보여준다. 첫째는 밧줄에 목을 매는 방법, 둘째는 엽총을 이용하기, 셋째는 차고에서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자동차 안으로 유입시켜서 질식사를 도모하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에는 철길 위로 뛰어 내려 달려오는 기차와 마주치는 방법 등이다. 물론 네 번의 서로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는 것은 앞의 방법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네 번째 자살시도를 제외한 나머지 방법들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 결정적 이유가 바로 마리솔과 이웃들의 등장 때문이란 사실이다. 주택단지를 매일 순찰하며 분리 수거로부터 주차 문제까지 속속들이 간섭을 해온 오토는 이웃주민들에게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제공받을 수 있는 해결사였던 것. 성격은 까칠해 보여도 도와달라는 이웃의 청을 거절 못하는 착한 마음씨의 소유자가 바로 오토라는 남자라는 사실은 이웃들이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오토의 자살 시도가 이웃에 의해 거듭 실패하게 되는 일은 OECD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행복지수가 59위(2022 세계행복보고서)에 불과한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눈여겨볼 만한 시사점이 있다.

첫째는 이웃과의 소통이 죽음을 중지시킬 수 있으며, 둘째는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행동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멀리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죽고 싶을 만큼 외로운 상황이란 아무도 자신을 찾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남을 도울 수 있는 여력의 상실에서 오는 진공의 상태라 할 수 있다. 마리솔은 남편이 다치는 바람에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자 오토를 찾아가 차로 거기까지 데려다 달라고 요청한다. 그것도 모자라 운전연수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남편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 아이들을 봐 달라고까지 한다. 그런데 툴툴거리고 퉁명스럽기 이를 데 없는 오토는 그러면서도 이러한 부탁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죽음을 내쫓는 중이다. 인간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주어질 때 숨쉬기를 포기하지 않는 법이다.

 

고독한 죽음의 현장과 유품정리사

마리솔은 어느 겨울 아침, 오토의 집 앞에 눈이 치워지지 않은 채로 덮여있는 것을 보고는 오토의 집을 향해 슬리퍼 차림으로 달려간다. 부지런하고 깔끔한 성격의 오토가 집 앞의 눈을 치우지 않는다는 것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뜻하는 메시지인 까닭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토는 침대 속에서 영면한 채 발견되고 마리솔 가족을 위한 유서를 남겨 놓는다.

한국 같았으면 또 하나의 고독사(孤獨死)로 남을 뻔했다는 생각에 따뜻했던 영화는 어느새 마음을 얼리고 만다. 죽은 후 몇 달이 지난 뒤 백골 상태로 발견된 독거노인의 주검 이야기가 불현듯 생각났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최근 사회적 고립도 조사에 따르면 전국민의 1/3은 사회적 고립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회적 고립도는 인적·경제적·정신적 도움을 구할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인지 나타내는 지표로서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고독사의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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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은 고독사는 유품정리사라는 신종 전문가들을 매스미디어 안으로 소환시키기 시작했다. 유품정리사는 한국사회가 겪는 비극이라 할 수 있는 고독사가 낳은 신종 직업이다.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생률,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르는 가족공동체의 붕괴,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한 독거노인의 증가 등 최근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심각한 사회현상들은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남긴 흔적을 지울 사람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

고독사는 가족이나 주변인들과 단절된 채 아무도 모르게 홀로 생을 마감한 후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발견되는 죽음을 의미한다. 보통 좁은 방안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더미와 배달된 음식물들 찌꺼기들이 썩어 있고, 술병들이 널부러져 있는 경우는 고독사 현장의 공통된 풍경이기도 하다.

2021년 5월에 공개된 넷플릭스의 10부작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는 유품정리사의 모습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유품정리사 그루(탕준상)와 그의 후견인 상구(이제훈)가 그루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 이사를 도우며 그들이 유품을 통해 미처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남은 이들에게 대신 전달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무브 투 헤븐>은 주요 국가에서 넷플릭스 인기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는가 하면, 2021 아시안 아카데미 크레이에티브 어워즈(Asian Academy Creative Awards, AACA)에서 각각 최고의 드라마 시리즈상과 남우주연상(이제훈)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품정리사 김새별이 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속에는 고독사를 방지할 수 있는 조언이 담겨있다. 귀를 기울이면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을 수 있다.

“내 가족, 내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만 있다면.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모른다. 포기하려던 삶을 부여잡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거창한 도움이 아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작은 배려와 친절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강진구 교수 (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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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음이 서툰 남자가 남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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