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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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겠습니다” 두 손에 용돈까지 받아든 둥지의 아이들은 잔뜩 신나서 온 골목이 시끄러울 정도로 목소리 높여 인사를 하고 몰려 나갔다. 아이들이 다 떠나간 뒤 시끌벅적하던 둥지는 너무도 조용했다. 따따이와 별님은 이렇게 조용해진 둥지가 어색한듯 물끄러미 아이들의 방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조금 뒤 정아가 둥지에 들어오다 따따이와 눈이 마주치자 놀란 듯 했다. “왜? 다시 왔어?” “아뇨. 뭘 깜빡하고 안 들고 가서..... 챙겨갈려구요” “그래. 며칠 있을건데 잘 챙기거라” 한참을 자신의 서랍장 앞에서 주섬주섬 챙기던 정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별님. 저 이번 명절에 그냥 둥지에 있으면 안돼요?” “왜 무슨 일 있니?” “아뇨. 그냥 몸이 안 좋아서요” 그리고 가만히 떨구는 얼굴에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무슨 일이 있는게 분명한 것을 눈치챈 별님이었다. “왜 아빠랑 뭔 일이 있어?” “바쁘데요. 그래서 이번에 만나기 어렵다고.......” 사실 정아는 아빠를 제외하면 찾아갈 집도 부모도 친척도 없었다. 그 아빠마저 교도소에서 3년간 복역을 하다가 2개월 전 가석방되어 나왔는데 서너번의 전화통화 외엔 찾아오지도 않았기에 만나지도 못했다. “어떻게 제가 여기 있는 걸 알면서도 한 번도 안 찾아올 수가 있어요? 우리 아빠 진짜 너무 하지 않아요?” “아마 바빠서 그럴거예요. 요즘 직장 알아본다고 바쁘다고 했어요” “다음 주에는 오겠죠?”

그리고 이번 설날 때 몇 년 만에 아빠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했는데 오늘 아침에 그 기대가 무너지게 된 것이다. 몇 번을 전화했으나 받지 않자 당장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어 30분이 넘게 골목에 쭈그리고 앉았다가 아빠에게 계속 전화를 했다. 겨우 연결된 전화였는데 명절에도 일을 해야 하기에 바빠서 만날 수 없다는 말에 온 몸에 힘이 빠진 채로 다시 둥지로 들어온 것이었다.

별님은 정아를 위해 명절 음식을 담은 점심식탁을 차리며 물었다.

“정아야! 너 전에 사상에 할머니 사신다고 하지 않았니?”

“예. 근데 아빠 교도소 가신 후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어요. 연락도 못했고”

“그럼 지금 전화해 볼래? 그래서 명절인데 잠시 인사라도 하고 오는건 어때?”

“그럴까요? 제가 가는 것 별로 안 좋아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냐. 그건 네 생각이고... 당연히 할머니가 손녀 오는데 반가워하시지. 한번 연락해보자”

“그럴까요?”

“할머니! 오늘 뭐해요?” “그냥요.... 좀 있다가 인사하러 갈게요” “예. 알겠어요”

아까보다 더 밝은 모습을 전화를 마친 정아에게 나나이가 물었다. “뭐라고 하셔?” “알았다고 오래요”

저 멀리 할머니집이 보이자 정아의 가슴은 꽁닥꽁닥 뛰었다. ‘오랜만에 나를 보면 뭐라 하실까?’ ‘혹시 사촌이나 조카들도 와 있는건 아닐까’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허벅지와 팔뚝에 있는 문신은 왠지 싫어하실 것 같아 옷을 애써 당겨 입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너무 긴장되어 바로 옆 골목에서 숨을 고르며 담배를 한 개피 물었다. 그리고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다가 연기 너머로 점점 뚜렷하게 보이는 얼굴로 인해 숨이 멈추는 듯 했다. 아빠였다.

“아...빠.... 여기 어쩐 일이야?” “그냥. 너는?”

“나는 할머니께 잠시 인사라도 할려고 왔지? 아빠 오늘 바쁘다면서?”

“아빠도 급하게 와서 인사만 하고 지금 가던 길이다”

정아는 아빠를 만나면 그렇게 보고 싶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는데, 막상 이렇게 만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얗게 변해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너 허벅지와 팔에 그 문신은 뭐냐?” “이거... 뭐 .... 그냥....”

“야~~ 이 가시나 봐라. 어깨에도 그림이 있네” “아니... 곧 다 지울거야”

“돈 들여서 새기고 뭐 할려고 또 돈 들여서 지우냐. 그냥 놔둬라. 이쁘네”

“어.. 어... 그럼 그냥 놔둘까”

“그래. 들어가봐라. 할머니 기다리시겠다,. 아빠 간다”

그리곤 아빠는 말 없이 사라져 갔다. 정아는 아빠의 익숙한 뒷모습에 괜히 서러움이 북받쳤다. 정아는 늘 자신을 놔두고 떠나가기만 하던 아빠의 뒷모습이 너무 싫었다. ‘잘 지내냐고 한번 물어봐주면 어디가 덧나나?’ ‘이쁘게 컸네라며 한번 안아주면 지금까지 나에게 잘못한거 다 용서해 줄 수 있는데...’

 

할머니를 만나 잠시 인사만 하고 도망치던 빠져나온 정아는 길거리에서 가족들끼리 오손도손 손 잡고 가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지하철 안에서도 다른 가족들의 다정한 모습이 보기 싫어 눈을 감은 채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둥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따따이와 별님에게 자랑했다. “저 오늘 할머니집에 가서 인사 잘하고 왔어요. 가길 잘 한 것 같아요. 그리고 할머니집 앞에서 아빠도 만났어요. 정말 오랜만에 만나 너무 반가웠어요. 아빠랑 곧 면회 오기로 약속도 했어요. 용돈도 주시는데 제가 안 받았어요.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어서 배도 안 고파요” 그렇게 잔뜩 자신의 희망사항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하였다. 그리고 조금 뒤 혼자서 라면 2개를 끓여서 김치와 최대한 맛있게 먹어치우면서 속으로 울었다. ‘다음 명절에는 괜찮아질거야’

 

이번 새해와 명절에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 가지시고, 소외된 외로운 이웃들에게도 작은 관심과 사랑을 실천하는 따뜻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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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 명절이라 더 슬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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