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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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부모님의 종교를 따라 증산도에 심취했었다. 태을주, 오주, 절후주, 운장주, 갱생주, 칠성경, 진법주, 개벽주, 천지불주를 다 암송하면서 주문을 낮밤으로 외웠다. 이것이 상제님의 가르침에 따라 인류가 相生과 福樂의 지상낙원을 건설해 나가는 진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불교의 經典에 심취되어 한 때 성철, 법정스님의 저서를 탐독했다. 그럼에도 내 삶의 환경은 상생과 복락의 체득은커녕 느낌조차 없는 가난과 질고의 세월이었다. 이런 삶을 이겨내지 못하고 삶을 포기할 즈음에 알지도 못하는 힘에 이끌려 교회로 갔고 처음 예배당에 앉았을 때 그토록 추구하던 상생과 복락을 무의식적으로 온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마흔 살에 목사가 되어 오늘도 목사의 길을 행보한다. 그 옛날 상생과 복락과 더불어 사는 삶을 교회를 통하여 내가 느끼고 경험하고 체득했기에 내가 교회를 통해 체득한 그 기쁨을 전하는 복음의 삶이 나의 삶의 전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相生의 아름다움이 아닌 相剋 相衝의 어둠이 짙어지는 것을 보며 느낀다. 무엇인지 모를 濁함으로 영혼이 숨을 쉬지 못하는 영적 고통이 심령폐부까지 밀려들기도 한다.얼마 전 원주 구룡산 중턱에 눈이 부시는 것보다는 마음이 더 부시는 뮤지엄 산(SAN)을 다녀왔다. 일본 건축의 철학자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작품이다. 2013년에 개장한 뮤지엄 SAN(Space, Art, Nature)은 자연과 예술이 있는 공간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 <SAN>이다. 그리고 우리 말 ‘산(山)’이기도 하다. 빛과 물과 바람의 건축가로 알려진 ‘안도’의 교회 작품으로는 오사카의 <빛의 교회>, 홋카이도의 <물의 교회>, 고베의 <바람의 교회>가 있다. 한국에도 ‘안도’의 작품이 몇 개 있지만 특히 제주도 <글라스 하우스>가 있다. 오래 전 자연과 예술이 조화된 공간 글라스 하우스의 <민트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원주에 세워진 해발 275m에 걸터앉은 뮤지엄 <산>에는 빛, 물, 바람을 재료로 쓰는 안도의 건축 철학이 담겨 있다. 웰컴센터에서 시작해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본관, 스톤가든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천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자연과 하나 된 미술관, 오솔길 지형을 그대로 살린 미술관, 7만여 평의 부지가 자연에 안긴 거대한 작품이 <산>이다. 그 <산>에서 삶을 묵상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절이다. 그리고 빛과 어둠, 땅과 물을 나누고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고 좋았더라 하시면서 여섯째 날 사람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라 하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창세기 1장이 마무리 된다. 빛과 물과 바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이다. 어딘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겠는가만 원주 <SAN>에서 다시금 하나님의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보았다.

단절된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 주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로 인해 단절의 담이 무너지고 수직으로 하나님과 수평으로 인간과의 관계가 이어졌다. 그 십자가 은혜를 깨닫는 사람은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사랑을 마음에 담고 살아간다. 그 삶 자체가 오늘의 천국이다. 역설하면 사람과 사람의 이어짐이 멈추고 단절된다면 하나님과의 이어짐도 단절된다. 하나님과 단절 되는 사람은 사람과의 이어짐도 멈춘다. 그것이 오늘의 지옥이다.

빛과 물과 공기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양과 질량은 다르지만 속성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빛은 따뜻해서 사랑으로 표현한다. 빛은 차별 없이 모든 곳을 비춘다. 그래서 진정한 평등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겸손으로 표현한다. 上善若水가 그래서 명언이다. 물의 흐름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있고 그 이치가 내재되어 있다.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다. 공기는 생명의 원동력이다. 이르는 곳마다 생명을 준다. 그런데 빛은 지하에 들어가지 못한다. 물은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한다. 바람은 막힌 곳을 지날 수 없다.

빛은 생명을 주지만 빛이 가열되면 火가 된다. 화가 이르는 곳에는 살아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은 만물의 생명을 살리지만 물이 濷이되면 생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바람은 濁함을 정화하지만 颱가 되면 모든 것을 휩쓸어 초토화 시킨다. 그래서 過猶不及이 명언이 된다.

나는 목사로서 사람을 많이 만난다. 목사이기에 예수 믿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십자가 道를 통해 빛처럼 사랑으로, 물처럼 겸손하게, 바람처럼 淨化 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종종 火와 濷과 颱의 사람을 만난다. 그들이 이르는 곳곳마다 水魔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火魔가 할퀴고 지나간 것처럼, 颱風이 휘몰아치고 지난 것처럼 폐허가 되는 것을 본다. 그들의 삶은 한 마디로 貪瞋癡, 곧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그 자체다. 불가에서는 이를 三毒이라 했고, 탐진치를 벗어남이 열반이요 해탈이라고 가르쳤다. 삶의 이치가 다를 바 있겠는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연주하는 자연의 이치 光水風의 교훈을 통해 내려놓음, 낮아짐, 물러섬, 그리고 때로는 멈춤의 삶을 사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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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光水風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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